백제 사비기(538~660년) 왕궁의 배후 산성인 부소산성에서 얼음을 보관하던 대형 창고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1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충남 부여군 부소산성 17차 발굴조사에서 빙고(氷庫)와 지진구(地鎭具)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진구는 건물을 짓기 전 토지신에게 건물과 대지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봉안하는 상징물로, 강력한 왕권과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시설물이 부소산성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번에 발견된 빙고는 동서 길이 약 7m, 남북 너비 약 8m, 깊이 2.5m 규모의 대형 시설이다. 평면은 사각형이며 내부 단면은 U자형 구조를 보인다. 초기에는 암반을 파서 벽으로 활용했으나, 이후 남쪽 벽에 돌을 세워 공간을 축소한 흔적이 확인됐다. 특히 바닥 중앙에는 길이 230㎝, 너비 130㎝, 깊이 50㎝의 구덩이가 있어 얼음이 녹은 물을 배수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빙고는 강력한 왕권과 국가 권력이 있어야만 구축·운영할 수 있는 특별한 위계적 공간"이라며 "얼음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특수시설"이라고 설명했다.
빙고 인근에서는 건물 축조 전 토지신에게 안전을 기원하며 묻는 지진구도 발견됐다. 목이 짧은 직각 형태의 항아리로, 둥근 구슬 모양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덮여 있었다. 항아리 내부에서는 중국 한나라 때 제작돼 730여 년간 사용된 동전인 오수전(五銖錢) 5점이 나왔다. 연구소는 "빙고의 성공적인 축조를 기원하기 위해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부소산성은 백제가 부여로 천도한 후 122년간 수도의 중심 역할을 한 곳이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1981년부터 17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2015년 부여 백마강변 구드래 일원에서 백제시대 빙고가 발견된 적은 있으나, 왕궁 배후 산성인 부소산성에서 빙고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소는 이날 18차 발굴조사 개토제를 열고 조선시대 군창지 서쪽 지역 조사에도 착수했다. 이 지역은 17차 조사에서 확인된 건축물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백제 사비기 왕궁터의 구체적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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