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첫 국회 국정감사가 13일 시작되는 가운데 기업인 증인을 대거 소환하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 올해 국감에서 각 상임위원회가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한 기업인은 164명으로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의 156명을 이미 넘어섰다. 아직 증인을 확정하지 않은 상임위의 증인 채택 절차가 마무리되면 국감장에 소환될 기업인 숫자가 200명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감에 앞서 여야 지도부는 “무분별한 기업인 증인 채택을 자제하자”고 공언했지만 빈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올해 국감 증인 명단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의 총수가 다수 포함됐다. 정무위가 28일 증인으로 채택한 최 회장은 같은 날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의장을 맡을 예정인데 해외 손님맞이 대신 국감장에 서야 할 판이다. 행정안전위원회는 정의선 회장을 증인으로 출석 요청하면서 해고된 사내 하청 업체 노동자들의 집회와 관련한 책임경영 문제를 이유로 내세웠다. 하청 업체 해고 노동자 집회에서 노조와 회사 측 경비 인력 간 충돌의 원인을 따지겠다는 명분인데, 총수를 불러낼 정도의 사안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가 국감과 증인 출석 등의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본래 취지는 여야가 입법·예산심사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정부 정책의 잘잘못을 따져 바람직한 국정 운영을 모색하자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야가 ‘내란 청산’ ‘실정 심판’을 예고한 올해 국감은 국정 바로 세우기보다는 극한의 정치 대결과 기업인 군기 잡기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국회 국감에서 뚜렷한 명분과 이유가 있다면 기업인을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인 면박 주기와 기업 때리기 도구로 증인 채택을 악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생존 전략을 짜기에도 바쁜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불러내 호통치는 구태는 이제 바로잡을 때가 됐다. 매년 거론되는 ‘국감 무용론’의 확산을 막으려면 여야는 정국 주도권 잡기 다툼에 매몰되지 말고 경제와 민생 살리기를 뒷받침하는 정책 국감에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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