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전쟁 2년 만에 휴전협정 1단계에 전격 합의했다. 노벨평화상 발표를 코앞에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외교가 일단 종전의 첫 단추는 끼운 셈이다. 다만 핵심 쟁점인 하마스의 무장해제 관련 언급이 빠져 있고 추가 협의해야 할 사안도 많아 완전한 종전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우리의 평화 계획 1단계에 모두 동의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린다”며 “이는 영구적인 평화를 향한 첫 단계로서, 모든 인질이 매우 곧(very soon) 석방되고 이스라엘은 합의된 선까지 군대를 철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합의된 선’이란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4일 트루스소셜에서 공개한 가자지구 내에서의 ‘이스라엘군 1단계 철수선’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끝에 이스라엘은 우리가 제시하고 하마스와 공유된 1단계 철수선에 동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후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과 인질 석방을 위한 헌신에 감사하다”며 “이는 이스라엘의 외교적 성공이자 국가적·도덕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9일 내각회의를 소집해 하마스와의 1단계 합의를 승인할 방침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하마스도 이날 성명을 통해 합의를 인정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완전한 휴전 이행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상을 중재해온 카타르의 마지드 알 안사리 외무부 대변인도 X(옛 트위터)에 “협상 타결은 전쟁 종식,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 인도적 지원 반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적었다.
로이터통신은 하마스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정부가 합의안을 승인한 후 72시간 내에 생존 이스라엘 인질 20명이 석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은 생존자 20명, 사망자 28명의 유해 등 총 48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측은 석방이 11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인질이 아마도 13일 석방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이집트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의회에서 연설하기를 원하면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이스라엘 방문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휴전협정 1단계 합의는 10일 예정된 노벨평화상 발표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인질들의 가족이 통화를 하는 동영상을 X에 공유하며 “의심할 여지없이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후보 추천은 올 1월 31일 마감됐고 수상자 선정은 지난해 업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트럼프의 수상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다. 노벨위원회 등을 노골적으로 압박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평화상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인질 교환 등) 합의가 지켜진다면 전쟁을 종식시키는 중요한 진전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달 7일로 2년째를 맞은 가자전쟁은 지금까지 6만 8000명(팔레스타인 6만 6000명, 이스라엘 2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닷새 전인 1월 15일 1단계 휴전을 이끌어냈지만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3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네타냐후 총리와 회담한 후 20개 항목으로 구성된 가자지구 평화 구상을 발표했고 이달 3일에는 하마스가 사흘 내로 평화 구상에 합의하지 않으면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결국 하마스가 이를 수용하면서 이집트에 급파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의 중재로 합의가 성사됐다.
다만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합의가 두 달 만에 깨진 전례가 있고 합의 세부 내용도 아직 공개되지 않아 종전까지의 과정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석방할 팔레스타인 명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견이 나와 작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직 전쟁이 끝날지 불확실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카타르, 이스라엘과 하마스 누구도 이날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요구하고 하마스가 거부해온 하마스 무장해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상원은 이날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임시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모두 부결돼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는 8일째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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