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송 서비스 무역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국가마다 관련 규범이 달라 갈등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개방성과 규제 강도가 중간 수준인 한국이 국제 규범 형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9일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발표한 ‘디지털 통상 현안과 한국의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전송 서비스 수출은 2010년 5391억 달러에서 2024년 1조6209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보고서는 "같은 기간 상품 수출은 등락을 반복한 반면, 디지털 전송 서비스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등 외부 충격에도 꾸준히 확대되어 변동성이 낮고 안정적인 성장 흐름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디지털 무역은 디지털 방식으로 주문되거나 디지털 방식으로 전달되는 모든 국제 무역을 말한다. 보고서는 관련 무역 규모는 늘고 있지만 데이터 이전 및 활용을 둘러싼 국가별 규범은 복잡해지며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유럽연합(EU)과 미국 간 개인정보 이전을 위한 ‘프라이버시 실드’ 협정은 2020년 유럽사법재판소에서 GDPR(유럽연합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의 역외 데이터 이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효화됐다. 이는 미국 CLOUD Act(미국이 해외서버에 저장된 데이터 이전도 요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등 자국 법률에 따른 정부의 데이터 접근 권한이 유럽 시민의 개인정보 보호 원칙과 충돌한 데 따른 결과였다. EU와 중국 사이에서도 GDPR과 중국의 데이터보안법·개인정보보호법이 상충하며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둘러싼 규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주요국의 규범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보고서는 OECD 디지털 서비스 무역 제한 지수(DSTRI)를 한국은 미국(+0.02), 일본(+0.04)보다는 다소 규제가 강하지만 EU(-0.02), 중국(-0.26)에 비해서는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나 주요국 사이에서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가희 SGI 연구위원은 “한국의 위치는 상대국의 시각에 따라 개방 부족이나 규제 완화로 해석될 수 있다”며 “특히 다자 차원에서는 WTO 협상 진전이 더딘 반면, 디지털 무역협정은 이제 막 체결 단계에 있어 이러한 이슈들이 양자 간 통상 갈등으로 더 쉽게 부각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SGI는 디지털 무역 부문에서 한국이 지속가능한 통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개방과 기술주권 간 균형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 확보 △국제 표준화 선도를 3대 과제로 제시했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자율주행처럼 개방과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와 국가 안보 및 전략 산업보호가 필요한 핵심 기술을 구분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무역 정책에서 완전한 개방이나 폐쇄적 보호주의를 지양하고, 지속 가능한 개방과 핵심 기술주권 확보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내 법제도가 국제 규범과 상충하지 않도록 정합성을 확보해야 하며국내 법제 간의 일관성도 함께 확보해 규제 파편화와 중복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동 연구를 진행한 이홍식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 무역 분야에서 개방성이 높은 만큼,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파트너 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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