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내림’을 받았다며 40년 가까이 무속 행세를 해온 80대 여성이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하던 조카가 곁을 떠나려 하자 숯불로 살해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30대 여성 조카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심모(80) 씨는 전남 함평군의 신당에서 종교 모임을 운영하며 공양비를 받아온 인물이다. 그는 39년 전인 1986년부터 ‘신이 빙의된 무당’ 행세를 하며 신도들의 전생을 말하고 “굿이나 공양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세뇌하듯 돈을 받아 챙겼다.
심씨의 동생 A씨와 그 자녀 4남매도 신도로 지내왔다. 그는 A씨에게 “네 딸이 전생에 아빠(A씨의 남편)와 연인이었다. 그래서 엄마(A씨)를 원망하고 죽이려 한다”며 공양비를 요구했다. 2007년부터 인천 부평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A씨는 수년간 수천만 원을 심씨에게 건넸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심씨가 4남매와 함께 제주도에서 운영하던 식당의 매출이 급감하고 대출 원금이 16억 원에 달하자 그는 신도들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A씨의 딸 B(35)씨 명의로 식당을 운영하며 수익금을 자신의 계좌로 보내게 했고, 이를 대출금 이자와 자녀들의 신용카드 대금 상환 등에 사용했다.
심씨는 A씨에게 "전생에서 부친과 연인이었던 네 딸이 미워하고 죽이려는 마음이 있으니 식당을 떠나면 딸을 잘 보살피겠다"며 아들·딸만 남기고 울릉도로 이사하도록 했다.
이후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던 B씨는 지난해 여름 술을 마시고 식당을 뛰쳐나갔다가 길거리에 쓰러졌다. 그 뒤 9월부터 식당 수익을 심씨에게 보내지 않고 직접 운영비를 지출하기 시작하자 심씨는 다시 B씨를 불러들였다. 그는 “네가 전생에 낙태한 적이 있어 그 혼령이 식당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모친을 죽이려는 악귀가 네 안에 있다”며 다시 불러들였다.
그러다 지난해 9월 18일 새벽 심씨는 B씨에게 식당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물었고, 예상과 달리 B씨가 "(부모가 있는) 울릉도로 떠나겠다"고 답하자 승합차에 태워 보내줄 것처럼 행동하다가 차량을 돌려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B씨에게 “악귀를 제거하기 위해 주술 의식을 하겠다. 악귀를 제거하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강제로 숯불 의식을 강행했다.
심씨는 신도들과 함께 철제 구조물을 세우고 B씨를 엎드리게 한 뒤 결박했다. 밑에 놓인 대야에는 불이 붙은 숯을 계속 넣었고, 경련을 일으키던 B씨의 입에 숯을 넣고 재갈로 묶은 채 여러 차례 뺨을 때리기도 했다. 3시간 넘게 지속된 의식 끝에 B씨는 의식을 완전히 잃었고, 상체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숨졌다.
이들은 철제 시설물 등 범행 도구를 숨긴 뒤 2시간이 지나서야 119에 신고했고 구급대원들에게 “숯을 쏟았다”고 거짓 진술했다. 하지만 범행 전 과정은 CC(폐쇄회로)TV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경찰은 처음에 상해치사 혐의로 송치했으나, 검찰은 추가 수사를 거쳐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심씨와 공범들은 “피해자의 이상행동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고의를 부인했고, 피해자의 부모 역시 “피고인들이 피해자(딸)을 도와주려다가 안타깝게 이렇게 됐다. 벌을 줄 것이면 나에게 달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인천지법 형사16부(윤이진 부장판사)는 1심에서 심씨에게 무기징역, 공범 4명에게는 징역 20~25년, 방조 혐의로 기소된 2명(B씨의 오빠·사촌언니)에게는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후 피해자의 유족에게 '나는 숯을 넣다 뺐다 했는데 애기령 천사들의 날갯짓으로 숯의 열기가 더 세게 들어간 것 같다'면서 자기 잘못을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피해자나 병원 탓을 하면서 자신의 억울함만을 호소했다"며 "피해자 사망 뒤에도 울릉도에서 다른 피고인들과 즐거운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해 죄의식이 있거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범들과 피해자 모친이 법정에서 보인 태도를 보면 여전히 (심씨의) 정신적 지배를 받는 것으로 보여 재범 위험성도 매우 높다"며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 재범을 방지하고 극악한 범행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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