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미성년자가 조부모에게 직접 증여받은 부동산이 1조5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부모 세대를 건너뛴 ‘세대생략 증여’가 여전히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세대생략 증여로 미성년자가 취득한 부동산은 총 9299건, 금액으로는 1조5371억 원에 달했다. 연평균 3000억 원 이상이 손주 세대로 바로 이전된 셈이다.
세대생략 증여는 부모를 거치지 않고 조부모가 손자·손녀에게 직접 재산을 물려주는 방식이다. 원칙적으로는 부모 세대에서 먼저 과세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를 생략할 경우 절세 효과가 생긴다. 다만, 부모의 사망이 아닌 상황에서 증여가 이뤄지면 산출세액의 30%가 더해지고, 미성년자가 20억 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받으면 가산세율은 40%로 높아진다.
연도별 증여 규모는 2020년 2590억 원, 2021년 4447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3580억 원, 2023년 2942억 원, 2024년 1812억 원으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년 3000억 원대 규모가 미성년자에게 넘어가고 있다.
자산 종류별로 보면 2018년까지만 해도 토지 증여액(평균 1억9000만 원)이 건물(1억6100만 원)보다 많았으나, 2021년부터는 건물이 토지를 앞섰다. 지난해 기준으로도 건물의 건당 평균 증여액은 2억1400만 원으로, 토지(1억3200만 원)보다 크게 웃돌았다. 이는 주거·상업용 건물 가치가 토지보다 빠르게 상승한 결과로 풀이된다.
연령별로는 2024년 기준 만 13~18세가 금액 비중 43.7%로 가장 많았고, 7~12세(33.5%), 0~6세(22.8%) 순이었다. 건수로도 13~18세가 44%를 차지해, 중·고등학교 시기가 본격적인 재산 승계 시점임을 보여준다.
심지어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영아에게도 증여가 이뤄졌다. 최근 5년간 0세 미성년자에게 이뤄진 증여는 188건, 총 371억 원으로, 건당 평균 2억 원 수준이었다. 출생 직후부터 거액의 자산을 보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이다.
민홍철 의원은 “세대생략 증여에 대해 할증 과세 제도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부유층의 절세 편법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미성년자 증여 재산의 자금 출처를 면밀히 조사하고 편법 여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매년 자금 출처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대규모 부동산 거래에서 편법 증여를 모두 걸러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민 의원은 “부의 대물림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대표적 원인 중 하나인 만큼, 정부는 보다 정교한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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