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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전투기 사업과 한국 외교의 빈틈 [박선태의 중남미 이슈와 문화]





엘 띠엠뽀(El Tiempo) 보도에 따르면 콜롬비아 정부가 스웨덴 Saab사의 Gripen 전투기 18대를 약 39억 달러 규모로 도입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국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오랜 우방인 콜롬비아에서조차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무기 수출 실패가 아니라, 방산외교의 취약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정부는 방산외교 강화를 내세워 군 출신 고위 인사를 최전선에 배치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대통령과의 독대는 물론 고위 참모, 의회 인사와의 접촉에도 실패하면서 방산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네트워킹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방산 사업은 군의 필요성과 기술 사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기 성능은 자료와 전문가 설명으로 충분하다. 외교 현장에서 공관장이 맡아야 할 역할은 정치·재정 결정권자와 신뢰를 쌓고 설득의 길을 여는 일이다.

KF-21은 Gripen보다 성능이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가격·유지보수 측면에서도 더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쟁의 장에조차 서지 못했다. 기술력이 아니라 외교적 준비와 설득력 부족이 패인의 본질이었다.

대규모 방산사업은 본래 쉽지 않다. 국제 경쟁이 치열하고,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국과 콜롬비아의 관계를 고려하면 이번 결과는 더욱 아쉽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에 파병한 유일한 중남미 국가이며, 오랜 세월 우호 협력 관계를 쌓아왔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스웨덴보다 뒤질 이유가 없는데도 경쟁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방산 수출의 성패는 기술력보다 정치적 신뢰와 전략적 접근에서 갈린다. 특히 많은 국가들이 무기 계약과 함께 옵셋(offset), 즉 산업협력·기술이전·현지투자를 요구한다. 대사관은 무기를 파는 창구가 아니라, 옵셋 의제를 발굴하고 조율하는 협상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번 실패는 바로 이런 외교적 준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사례는 방산외교를 군사기술 차원에만 한정하는 좁은 시각에 경종을 울린다. 방산외교의 본질은 정치적 설득, 외교적 네트워킹, 경제적 이해관계 조율에 있다. 출신보다 중요한 것은 역량과 열정, 국익을 지켜낼 전략적 안목이다.

방산외교는 곧 실리외교다. 상대국이 “이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과 사회, 정치권을 설득하는 공공외교 능력도 필요하다. 외교는 기술과 논리만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불러낼 때 비로소 성과가 온다.

콜롬비아 전투기 구매 사례는 한국 방산외교가 놓친 아픈 경험이다. 더구나 이번 계약 규모는 한국이 콜롬비아에 매년 수출하는 총액의 4년치를 합한 것과 맞먹는 거대한 금액이었다. 그만큼 기회가 컸던 만큼, 이번 실패의 교훈은 더욱 무겁다. 이제는 형식보다 실질, 출신보다 역량, 명분보다 성과를 앞세워야 한다. 그것이 국익을 지켜내는 길이며, 방산외교뿐 아니라 한국 외교 전반에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이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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