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서울추모공원에는 화장 시설 이용 일정을 알아보려는 유가족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전국 화장 시설을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는 ‘e하늘장사정보시스템’이 이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접속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추모공원에서 진행된 화장 64건 모두 유선 예약일 정도로 문의 전화가 쏟아지는 탓에 일부 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도 없이 직접 이곳을 방문해 예약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서울추모공원의 한 관계자는 “시스템 먹통 사태 이후 24시간 유선 예약이 가능하도록 조처를 취했다”며 “문의 전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화장 예약이 늦어지는 등 이용객 불편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자원 화재 여파가 장례식장이나 화장 시설 예약, 장애인 생활 지원, 수급자 증명서 발급 등 국민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보건복지 분야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서비스가 복구되기는 했지만 주말 동안 시스템 먹통에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이 몰려든 탓에 우체국과 주민센터 등 공공 서비스 기관들은 하루 종일 민원에 시달리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현충원이나 호국원들도 이번 화재로 인한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호국원인 국립영천호국원은 다음 달 15일부터 시작되는 자연장 묘역 안장을 앞두고 이달 26일부터 희망자 접수에 나섰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신청서를 수기로 접수하는 사태를 맞았다. 신규 안장은 물론 이장을 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영천호국원 관계자는 “27일 기준 유공자 안장 10건과 배우자 합장 6건이 접수됐지만 모두 신청서를 팩스나 수기로 접수 받았다”며 “다른 국립묘지들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전달 받기로는 시스템 복구까지 2개월 가까이 걸릴 수 있다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전자바우처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각종 보건 분야 활동 지원가들이 제때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장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보장정보원 등으로부터 바우처 형식으로 급여를 지급받는 활동 지원가들은 지난 토요일부터 급여가 밀린 상태다. 서울의 한 장애인협회 활동지원센터는 80여 명에 달하는 지원가들이 결제를 받지 못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한 달에 세 차례에 나눠 지원가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선결제 후지급 방식인데 현재 결제와 지급 모두 막힌 상황”이라며 “사회보장정보원 측에서 조치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들었지만 언제 정상화된다는 공지는 따로 오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기존에 운영에 차질을 빚었던 주민센터와 우체국은 이날 업무가 정상화됐지만 추석을 앞두고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몰려든 시민들로 북적였다. 국정자원 화재 이후 첫 영업일인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주민센터 민원실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자마자 10분도 채 되지 않아 15명이 넘는 시민들이 번호표를 뽑아 들고 대기하는 모습이었다. 인근 서울 광화문우체국도 마찬가지였다. 대면 접수가 무리 없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무인 우편 접수기에는 ‘장애 발생’ 안내문이 계속 붙어 있었다. 시스템이 완전 복구된 것으로 알고 접수기를 이용하려던 일부 고객들은 발걸음을 돌리고 직접 수기로 접수지를 작성하는 모습이었다.
신선식품 소포 접수도 여전히 중단된 상태였다. 배송이 지연될 경우 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50대 한 모 씨는 “요금이 다소 비싸더라도 신뢰성이 높다고 생각해 우체국을 이용했는데 낭패를 봤다”면서 “번거롭더라도 추석 직전까지는 일부 상품을 직접 배달하려 한다”고 토로했다.
금융권에서도 업무에 차질이 발생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주요 은행에서는 비대면 채널에서 실물 주민등록증을 통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해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실물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과 관련된 업무는 입출금 계좌 개설, 인증서 발급 등이다. 특히 대면 창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일부 대출 상품 취급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케이뱅크와 토스뱅크는 화재 직후 일부 대출 상품 취급을 중단했고 카카오뱅크는 고객이 실물 서류 이미지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출 심사를 진행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