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달 31일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시 주석과의 전화 통화 후 이 같은 합의 내용을 전하고 “내가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하고 시 주석도 적절한 시기에 미국으로 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APEC 정상회의는 본래 경제·통상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국제 행사이지만 올해는 트럼프 2기 정권 출범 후 처음이자 6년여 만의 미중 정상 간 만남이 예고되면서 어느 때보다도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됐다. 한국의 외교 보폭도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11년 만에 성사되는 시 주석의 방한을 국빈 방문 형식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미·한중·한일 등 양자 정상회담이 한꺼번에 진행될 가능성도 크다.
판이 커진 APEC 정상회의는 주최국인 한국에 외교적 기회이자 시험대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양국 정상 간 만남의 무대가 되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물리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가교(bridge)’의 외형을 갖게 된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달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서 한국 대통령 최초로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토의를 주재하는 데 이어 APEC 무대에서 ‘미중 중재자’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다자외교 리더십까지 발휘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다만 APEC 정상회의가 ‘미중 진영 갈등의 최전선’이 될 위험도 크다. 중국 관영 매체는 최근 우리나라를 겨냥해 “한중이 APEC에서 보호주의에 반대하자”고 압박했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한국 외교와 글로벌 정세가 중대한 갈림길에 설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다자외교 리더십과 소통 역량에 따라 글로벌 통상 질서와 한미일 대 북중러 냉전 구도, 북핵 문제 등이 중대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착에 빠진 한미 관세 협의와 한미 동맹 현대화, 한중 관계의 향방, 일본 새 리더십과의 협력 여부도 APEC을 계기로 추진되는 한미·한중·한일 양자 정상회담 결과에 달렸다. 치밀한 전략과 완벽한 준비로 이 대통령의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제대로 펼쳐 보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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