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여당의 탄핵 추진으로 사법부가 정치적 공방에 휩싸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으로 위기에 처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6월 조기 대선으로 복원되기 시작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협치와 통합은 점차 요원해지고 있다.
취임 100일의 대통령 기자회견은 취임 선서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권력에는 서열이 있고 국민이 직접 선출한 입법부가 간접 선출된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대통령의 인식은 상당히 놀라웠다. 사법 개혁과 내란특별(전담)재판부 설치가 위헌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였지만 어쩌면 자신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장에 대한 여권의 전방위적 사퇴 압박의 사전 준비였을지도 모른다.
권력에 서열이 있다면 헌법재판소가 직접 선출 권력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열 발언은 더불어민주당 다수의 국회를 통해 사법부를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대통령제의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또한 지난 100일간 보여준 대통령의 통합과 협치를 위한 진심 어린 노력은 빛이 바랬고 우리 정치의 시계를 대선 이전의 사법 혼돈의 시점으로 되돌려버렸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지긋지긋한 양극단의 진영 대결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진정한 사명감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5200만 국민이 보내준 5200만 가지 열망과 소망을 가슴에 품고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국민 모두를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그러나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협치는 야합과 다르다’고 발언하며 자신과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진영과는 타협도 존중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 개최된 여야 대표와의 영수회담은 모처럼 협치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며칠 후 3대 특검법 원내대표 합의안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야당인 국민의힘을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닌 야합의 행위자로만 보는 대통령과 여권의 위험한 인식을 노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밝힌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를 바란다. 취임사에서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라고 했듯이 공존과 통합의 가치를 실현하는 유능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는 초심을 다시 한번 다지고 실천해 5200만 국민 모두를 아우르고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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