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추진된 한국과 미국 간 통상장관 회담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한미 관세 협상은 장기전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협상이 길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물밑 교섭을 이어나가면서 교착 상태에 대비해 각종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날 새벽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앞서 김 장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 관련 세부 내용을 조율하기 위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러 당초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11일 오전 미국 뉴욕으로 향한 바 있다. 산업부·기획재정부 실무 대표단이 현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협의를 진행했으나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김 장관이 급히 장관급 만남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깜짝 회동’ 역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은 12일(현지 시간) 뉴욕 모처에서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측은 협의 결과에 대한 설명을 일절 내놓지 않았다. 김 장관은 이날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면서 협상 성과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김 장관은 또 러트닉 장관이 ‘일본식 투자 모델’을 수용하라고 요구했는지 묻는 질문에 “일본 모델이라기보다는 어차피 관세 패키지가 있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특정 사업을 지정하면 투자금을 45일 내 조달하고 수익은 원금 회수 시까지 양측이 절반으로 나누되 원금 회수가 끝나는 시점부터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내용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미국 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지 묻자 “모두 수용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며 “우리 국익과 기업들에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까지 가시화된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우리 정부가 이미 3500억 달러(약 488조 원) 규모 대미 투자 시 직접투자 비중을 크게 늘리고 주도권을 미국에 내주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협상팀은 향후 미국과의 비공개 물밑 협상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정부는 협상 장기화에 대비해 조만간 신대외경제전략을 발표하고 철강·자동차 등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편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을 만나 최근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317명 체포·구금 사태에도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중앙정부에서도 유감을 표했으며 이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양자 간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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