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난간에 서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자칫 한순간에 나도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찔했죠.” 이달 새벽 자살 암시 문자를 남기고 집을 나간 중학생을 한 시간 가까이 설득 끝에 구조한 한 경찰관의 말이다. 학생은 구조돼 가족에게 인계됐지만, 현장에 투입된 경찰관은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자살 관련 112 신고 건수는 2022년 11만 2465건, 2023년 12만 747건, 지난해 11만 9939건으로 매년 12만 건에 육박했다. 하루 평균 300건 이상 접수되는 셈으로, 올해 상반기에도 이미 5만 8353건이 기록돼 연말까지 다시 12만 건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최근 서울 강서구 등촌역 인근 주상복합에서 세 모녀가 동반 투신해 목숨을 잃는 등 안타까운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신고가 모두 구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실제 구조 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로 통보된 ‘자살시도자 정보연계’ 건수는 4만 5000건, 올 상반기에도 2만 5328건에 그쳤다. 전체 신고 가운데 60% 이상이 허위·중복·오인으로 확인돼 결국 ‘헛걸음’으로 끝난 것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10건 중 6건 이상이 허탕이라는 얘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는 한밤중 옥상, 고층 아파트 난간, 철로 등 극도로 위험한 장소에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착했을 때 이미 상황이 종료됐거나 장난성 허위 신고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살 시도 현장에서는 말 한마디 잘못해도 상대방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긴장 상태가 극도로 높아진다”며 “헛걸음이 반복될수록 허탈감과 피로가 배가된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렇게 누적되는 심리적 부담을 치유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경찰관 전담 상담기관인 ‘마음동행센터’는 현재 전국 18곳에 불과하며, 상주 상담사도 38명에 그친다. 올 상반기에만 8937명의 경찰관이 1만 8813건의 상담을 받았지만, 지난해보다 상담 인력은 고작 2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상담 수요는 늘어나는데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자살 시도 현장 노출이 경찰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 시도 장면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 경찰·소방관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나타날 수 있다”며 “적절한 심리 개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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