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갈 때는 평소 쓰던 휴대전화 대신 임시 기기를 가져가세요."
최근 미국 입국을 앞둔 여행객들이 변호사·개인정보 전문가들의 이런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여행객 전자기기를 열람하고 경우에 따라 입국까지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여행을 앞둔 외국인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잠그고 사진·메시지를 삭제하거나 아예 '일회용 휴대폰'을 준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과학자 필립 밥티스트는 지난 3월 스마트폰 검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비판 글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됐다. 호주 작가 알리스테어 키친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관련 기사에 대해 심문을 받았고 결국 과거 마약 사용 정황이 스마트폰에서 포착됐다는 이유로 추방당했다.
캐나다 변호사 겸 공연가 키스 세리는 뉴욕 공연을 앞두고 미국행을 취소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던 나라에서 의견 검증을 받으며 입국해야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며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호주국립대 교수 도널드 로스웰도 같은 이유로 미국 강연 초청을 거절했다.
미국 입국을 앞둔 이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자기검열'이 일상처럼 퍼지고 있다. 친척 결혼식 참석을 위해 미국행을 준비한 캐나다인 여성 케이트는 출국 직전 SNS 앱을 전부 삭제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CBP는 최소한의 이유만으로도 입국자의 휴대기기를 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전체 여행객 4억 2000만 명 중 약 4만 7000명이 검사받는 데 그쳤지만 올해 들어 단일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영리기관 전자개인정보센터(EPIC)는 "정치적으로 불편한 인물들을 겨냥하는 표적 검사가 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미 국토안보부는 "정치적 성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여행객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이미 만연하다. 한 이민 전문 변호사는 "사람들이 '내가 뭘 잘못했나', '문제가 될 게 있나'라는 불안에 휩싸인다"며 "미국 여행 자체를 다시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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