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40~50대가 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환우회를 시작했습니다.”
김현주(사진) 한국저인산효소증환우회 회장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달 초 국내에서 처음으로 저인산효소증환우회가 출범했는데 등록 회원은 8명으로 숫자는 미미하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다”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환우회를 출범시켰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에 거주하는 김 회장은 하림 익산본사에서 30년째 근무 중이며, 지난해 6월 저인산효소증 진단을 받았다. 저인산효소증은 근육대사와 뼈 형성 과정에 필수 효소인 알칼라인포스파테이스의 감소로 인해 뼈의 재생 및 무기질화 작용에 문제가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병적골절, 성장장애, 조기유치 탈락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희귀질환 특성상 진단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다.
김 회장은 “처음 저인산효소증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로 2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꼬리뼈가 골절된 것이 계기였다”며 “정밀검사 결과 알칼라인 포스파테이스 효소 결핍으로 인한 뼈 대사 이상, 즉 저인산효소증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가족에게도 충격은 이어졌다. 이 질환은 유전인 만큼 진단 직후 자녀들도 검사를 했고, 결과는 잔혹했다. 아들은 근이양증, 딸은 저인산효소증을 확진 받았다. 김 회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유산도 겪은 터라 아이들이 더욱 소중했는데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저인산효소증은 희귀질환이어서 환자 수가 적어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김 회장 역시 진단 당시 환우회가 없어 답답했고,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환우회를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울타리’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이 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면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게 목표다”며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현재 보다 훨씬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저인산효소증의 치료제는 존재하지만 문제는 접근성이다. 현재 건강보험 급여 적용은 만 19세 미만 소아기 발병 환자에게만 국한된다. 성인 진단 환자는 치료제 비용을 100%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와 수십만 원대 검사비는 사실상 치료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장벽이다.
김 회장은 “성인 환자도 치료받을 권리가 있는데 증상이 겉으로 뚜렷하지 않으면 환자로 인정받기조차 어렵다”며 “결국 일상생활조차 힘든 상태가 되고 직장 생활도 불가능해지는 이 문제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아주대병원에서 정윤석 내분비대사내과 교수와 상태를 확인하며 비타민D와 철분제 복용으로 버티고 있다”면서 “기회가 되면 성인 대상 임상시험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김 회장은 힘겨운 투병 속에서도 삶을 지탱해 온 원동력으로 ‘긍정’을 꼽았다. 그는 “‘하면 된다’, ‘나는 오뚝이다’와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다”며 “지난 3월 내 투병을 지켜봐주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직도 마음이 아픈데 그래도 어머니가 곁에서 힘을 주고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저인산효소증 환자와 가족들을 향해 “검사와 치료 과정이 두렵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리고, 우리 환우회가 그 길을 함께 열어갈 테니 용기를 내라”고 당부했다.
이어 “국내 저인산효소증 환자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희귀’라는 말 속에 가려진 목소리는 분명 존재한다”며 “환자와 가족들이 힘을 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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