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망간 배터리는 한국 전기차의 글로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게임체인저’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국내 배터리 업계는 고성능의 하이니켈 배터리에 집중해왔지만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이후 저가형 배터리에 대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전기차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중국에 크게 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005380)그룹이 차세대 보급형 배터리 상용화를 앞장서 추진함에 따라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6일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LFP 양극재 탑재량은 올 상반기 기준 63만 900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6%나 뛰었다. 지난해에는 104만 2000톤으로 한국이 선도하는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또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89만 8000톤)를 처음으로 앞섰다. 양극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용량과 출력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다. 이 같은 추세는 세계적인 전기차 보조금 축소 추세 등의 영향으로 LFP 배터리가 실리는 중·저가형 전기차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LFP 배터리는 킬로와트시(㎾h)당 60달러 안팎에 판매된다. 삼원계 대비 20% 이상 저렴한 수준이다.
하지만 LFP 배터리는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로서는 ‘양날의 검’이라는 분석이다. 당장에는 전기차 가격을 낮춰줄 수 있는 효과적인 부품이지만 주요 시장의 정책 스탠더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대표적으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에는 8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럽연합(EU)이 배터리 재활용 규정을 올해 말부터 의무화하게 됨에 따라 원자재 회수가 어려운 LFP 배터리가 불리해졌다. LFP는 폐배터리 내 리튬 함량이 약 2%에 불과하다.
현대차그룹이 자사 전기차 플랫폼에 최적화된 보급형 배터리 상용화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열린 ‘2024 CEO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보급형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신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또한 경기 의왕연구소에 차세대 배터리 연구동을 세워 차세대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LFP 배터리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특히 삼원계 배터리에서 니켈 비중을 낮출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니켈 가격은 톤당 1만 4745달러로 망간(1052달러)의 10배가 넘는다.
미드망간 배터리는 전기차를 넘어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산업에도 두루 활용될 수 있는 기술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와 UAM을 미래 신 사업으로 키우고 있는데 LFP 배터리는 무겁다는 한계로 인해 경량화가 필수적인 휴머노이드나 UAM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다. 반면 미드망간 배터리는 LFP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데다 하이니켈 대비 화재 우려가 낮다는 장점이 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미드망간 배터리 양극재는 충전·방전시 결정 구조가 거의 변하지 않는 ‘무응력’ 소재로 배터리 화재 원인이 되는 열폭주 시작 온도가 하이니켈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 교수는 “처음 미드망간 배터리 양극재 기술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시행착오 끝에 기술을 완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면서 “중국 LFP 배터리에 대항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배터리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LFP 배터리의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는 LMR(리튬·망간 리치) 배터리의 경우 미국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미드망간으로 한국만의 차세대 보급형 배터리 상용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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