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세계 최초로 321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공급을 정조준한 제품으로 현재 출시된 낸드 중 저장 용량이 가장 크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던 낸드 시장이 반등하는 시점에 경쟁사를 따돌릴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SK하이닉스는 321단 2테라비트(Tb) 쿼드러플 레벨 셀(QLC) 낸드플래시 양산에 돌입한다고 25일 밝혔다. PC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에 우선 적용하고 AI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에 나선다.
낸드플래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반도체다. 데이터를 얼마나 쌓아 올렸는지를 단수로 표현한다. 321단은 아파트를 321층까지 쌓아 올린 것과 같다. 층수가 높을수록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이번 제품은 저장 방식으로 QLC를 적용했다. 이는 데이터 저장 최소 단위인 셀 하나에 4개의 정보를 담는 기술이다. 1개의 방에 4명이 함께 사는 셈이다. 덕분에 용량을 이전 세대보다 2배 늘린 2Tb(테라비트)로 키울 수 있었다.
통상 낸드플래시는 용량이 커지면 속도가 느려진다. 하나의 방에 많은 정보를 구겨 넣으면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레인(Plane)’을 늘리는 기술을 활용했다. 플레인은 반도체 칩 내부에서 데이터를 옮겨 담는 바구니와 같다.
SK하이닉스는 이 바구니 개수를 기존 4개에서 6개로 확대했다. 바구니가 많아지니 더 많은 데이터가 막힘없이 동시에 오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데이터 전송 속도는 100% 빨라졌고 쓰기 성능은 최대 56%, 읽기 성능은 18% 개선됐다. 용량과 속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전력 효율도 23% 이상 높아져 저전력이 중요한 AI 데이터센터에 최적이다.
정우표 SK하이닉스 부사장(낸드개발 담당)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AI 수요와 데이터센터 시장의 고성능 요구에 발맞춰 풀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AI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메모리 반도체를 완벽하게 공급하는 해결사)로서 더 큰 도약을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이번 신제품 출시는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낸드 시장은 매출 기준으로 삼성전자(005930)가 31.9% 점유율로 1위를, SK하이닉스가 18.2% (자회사 솔리다임 포함 시)로 2위를 기록했다. 그 뒤를 키옥시아(17.5%), 웨스턴디지털(16.9%), 마이크론(13.0%) 등이 바짝 쫓고 있다.
특히 AI 서버용 고용량 제품 수요가 시장을 이끌면서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주요 업체의 낸드 사업은 오랜 침체 터널을 지나 하반기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회복기에 맞춰 초격차 기술을 탑재한 신제품으로 점유율 격차를 좁히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SK하이닉스 측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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