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가장 치명적인 암이다. 조기 발견이 어렵고, 수술이 가능한 환자가 20% 남짓에 불과하다. 설사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절반 이상은 다시 재발한다. 그럼에도 최근 국내에서는 항암 치료와 수술 술기의 발전으로 생존율이 과거보다 두 배 가까이 개선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황호경 교수는 “췌장암이 무서운 이유는 너무 늦게 발견되기 때문”이라며 “흡연, 만성 췌장염, 당뇨 등 고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복부CT 등 췌장암 검사를 통해 조기발견과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췌장암 수술 권위자 황호경 교수가 23일 오후 9시에 방영되는 서울경제TV 메디컬 토크 프로그램 '지금, 명의'에 출연한다. 췌장암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려준다.
-췌장암이 ‘악성암’인 이유
첫째, 증상이 거의 없다. 췌장은 배 가운데, 명치와 배꼽 사이 깊숙한 ‘후복막’에 자리한다. 췌장 앞에 위·대장이 가로막고 있어 초음파 검사로는 잘 보이지 않고, 환자 스스로도 증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등 통증 같은 증상으로 환자가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진행된 경우가 많다.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20% 정도이고, 나머지 80% 환자들은 주변 장기나 혈관에 암이 침범해서 수술이 어려운 상태에 발견된다. 그래서 5년 생존율이 16.5%에 불과하다. 수술조차 못하는 환자는 항암 치료밖에 길이 없고, 평균 생존 기간이 14개월 정도다.
둘째, 암 자체의 공격성이 높다. 연구실에서 현미경으로 췌장암 세포를 관찰하다 보면 하루 사이에 2~3배 증식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이가 잘되고 재발 위험이 높은 이유다.
-췌장암 생존율이 2배로 올라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췌장암 생존율이 8.6%(2006~2010년)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16.5%(2018~2022년)까지 올라왔다. 2배 가까이 높아진 것. 생존율을 2배로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항암제 발전이다. 1990년대부터 20년간 ‘젬시타빈’ 한 가지 약만 표준 치료였지만, 2010년대 이후 두세 가지 약제를 병용하면서 성적이 개선됐다.
둘째는 수술 술기의 발전이다. 선배 의사들이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이 더 정교하게 수술하고, 환자 회복이 빨라지면서 항암 치료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성과가 생존율 개선으로 이어졌다.
-췌장암은 왜 생기나?
췌장암의 대표적인 위험 인자는 ▲고령 ▲흡연 ▲과음 ▲만성 췌장염 ▲당뇨 ▲가족력 등이다. 특히 흡연은 췌장암 위험을 2~3배 높인다. 가족력이 있는 환자가 흡연까지 한다면 위험은 최대 150배까지 치솟는다. 음주의 경우는 만성적으로 췌장염이 잘 생기게 되고, 이는 췌장암의 위험요인이 된다. 췌장암과 선후 관계가 명확치는 않지만 당뇨가 있는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고령에 갑자기 당뇨가 생겼거나, 마른 체형인데 당뇨가 생겼거나, 당뇨가 어느 순간 조절이 잘 안되는 사람은 췌장암을 염두에 두고 검사를 해봐야 한다.
-가족력도 영향을 미치나?
직계 가족에서 2명 이상 췌장암에 걸렸다면 가족성 췌장암이라고 한다. 가족성 췌장암은 전체 췌장암 환자의 10% 미만이다. 가족력도 위험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나?
조기 진단은 여전히 난제다. 현재로선 복부 CT가 가장 정확하다. 비교적 쉽게 찍을 수 있는 복부 초음파는 췌장이 잘 보이지 않아 한계가 있다. 췌장이 후복막에 위치하다보니 그 앞에 위와 대장이 있고 가스가 차 있어 초음파로 놓칠 수 있다. 최근에는 혈액·소변을 이용한 액체생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 수술은 어떻게 진행되나?
췌장암 수술은 종양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꼬리 쪽 종양은 비교적 간단하게 수술이 가능하다. 췌장 절제와 함께 비장을 제거하면 된다. 췌장 머리 쪽에 생긴 종양은 수술이 좀 복잡하다. 췌장의 앞쪽 절반과 함께, 거기에 붙어있는 십이지장·담도·담낭까지 한꺼번에 절제해야 한다. 절제 후에는 췌장액과 담즙이 흘러가게 하기 위해 소장과 잘 연결해줘야 한다. 췌장액이 지나가는 췌관은 직경이 2~3mm밖에 안 된다. 담즙이 흘러가는 담도 역시 직경이 1cm 정도 밖에 안된다. 이 작은 관의 문합을 정교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췌장액이나 담즙액이 새서 주변에 혈관이나 장기들을 녹이는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항암 치료는 어떤가?
췌장암은 안타깝게도 표적치료제나 면역항암제 같은 최신 항암제들이 잘 안 듣는다. 암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을 겨냥해 암만 치료하거나, 환자의 면역 억제를 막아 암을 사멸하는 획기적인 약들이지만, 췌장암에서는 잘 듣지 않는다. 대부분 세포독성 항암제 여러 개를 조합해 치료를 한다.
-중입자 치료도 한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중입자 치료를 도입했다. 중입자는 탄소 이온을 가속기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암 조직에만 조사하는 방사선 치료법으로, 수술이 불가능한 국소 진행형 췌장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아직 중입자 적용 환자 수가 100여 명 수준이고, 장기 성적을 분석하려면 몇 년이 더 필요하지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치료 후 관리는?
운동이 최고의 약이다. 수술 후 절반 이상은 재발하는데, 체력을 지켜야 항암 치료를 완주할 수 있다. 특별한 운동이 필요한 게 아니다. 매일 계단 오르기, 뒷산 오르기만 꾸준히 해도 큰 차이를 만든다. 췌장암 예방을 위해서는 ▲금연 ▲절주 ▲과식·기름진 음식 피하기가 기본이다. 췌장은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쉴 새 없이 일한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혹사시키면 탈이 난다. 단순하지만 과식하지 않고 췌장에 휴식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한 예방법이다.
-췌장암 환자에게 한 말씀
췌장암 진단을 받으면 누구나 절망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 가족의 사랑이 환자를 지탱하는 힘이다. 내 환자 중에도 전이가 있었지만 긍정적인 성격으로 항암 치료를 2년 넘게 견디고, 결국 수술까지 받아 지금도 건강하게 지내는 분이 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췌장암은 암 크기가 불과 2~3cm로 작지만, 최악의 암으로 꼽힐 정도로 무섭다. 췌장암 수술을 하다보면, 우리의 생명을 무너뜨리는 것도 작은 것이고, 또 우리 몸을 회복시키는 힘 역시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건강 루틴을 실천하는 것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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