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넷플릭스 드라마 인기 순위 1위는 ‘에스콰이어’다. 제목만 보고 구두에 얽힌 이야기인가 싶었다. 클릭해보니 부제가 붙어 있다.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 1위라고 하기에 1화를 시청했고 2화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알고 보니 ‘에스콰이어’는 구두 브랜드가 아니라 미국에서 변호사를 존칭할 때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엔 ‘서초동’을 봤다. 서초동 로펌 변호사들의 성장 이야기다. 중학생 딸은 남자 주인공 변호사가 너무 잘 생겨서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을 수 없단다.
법률 드라마가 참 많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굿파트너’ ‘로스쿨’ ‘친애하는 판사님께’ ‘검사내전’ ‘악마판사’ ‘소년심판’ ‘신성한 이혼’ ‘이판사판’ ‘하이에나’ ‘리갈하이’ ‘군검사 도베르만’ ‘검사 프린세스’ 등등. 외국 드라마도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와 ‘슈츠’ 등 수두룩하다. 주인공은 변호사나 판검사다. 하나같이 잘 생겼으면서 능력 있고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법률 드라마만큼 흔한 게 메디컬 드라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중증외상센터’ ‘굿닥터’ ‘고스트 닥터’ ‘낭만닥터 김사부’ ‘닥터 차정숙’ ‘닥터 슬럼프’ ‘의사 요한’ 등. 미국 메디컬 드라마 ‘ER’이나 ‘그레이 아나토미’는 국내에서도 팬들이 많다. 의대생부터 전공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명의까지 의사들의 세계를 다룬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드라마 속 ‘멋진 직업’이 변호사나 의사에 집중돼 있는 것 같아서다.
최근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졸부처럼 보이던 중국의 체계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자부심에 놀랐다. 더 놀라운 건 의대에 목매는 한국의 현실이다. 구독자 50만 명이 넘는 유튜버가 묻는다. “족집게 과외 선생님께 1억 원을 주면 무조건 의대 보내 준대. 그럼 쓸 거야, 안 쓸 거야?” 댓글창은 “무조건 쓴다”로 가득 찬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는데 가장 많이 추천받은 직업이 의사였다” “공대는 안 된다. 가서 뭘 먹고 사려고 그러냐”는 고등학생들의 인터뷰.
IMF 시절 직장 해고와 기업 도산을 경험한 부모 세대는 위기에도 일할 수 있는 직업,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면허’ 가진 직업을 선호한다. 돈 잘 벌고 안정된 직업을 원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의대나 로스쿨 선호는 열풍을 넘어 광풍이다. “아이가 공대에 합격하면 너무 좋다. 자랑스러울 것 같다”고 말하는 중국 부모와 “의대는 엄마의 수고에 대한 확실한 도장이다. 공대 나와 봐야 월급쟁이잖나”라고 말하는 한국 부모의 대비는 극명하다. 은퇴 걱정 없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인문계 졸업 후 법학전문대학원 외에는 길이 없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교육제도나 사회구조를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온통 성공한 변호사와 의사만 주인공인 드라마가 특정 직업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가 된다. 인기 순위 상위권 드라마에서 멋지고 돈도 잘 벌고 존경받으며 대우받는 과학자 주인공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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