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산업안전 정책의 최우선 수단으로 엄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연일 강경책을 쏟아내고 있다. 산업안전 제재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추세라면 ‘제재 왕국’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문제는 제재 강화가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을지 따지지 않고 내지르고 본다는 점이다.
중대재해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별 기업의 문제로 ‘빙의’시키는 것은 국민들의 분노 표출 수단으로는 매력적이지만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방치하기 십상이다. 특정 대기업을 강하게 때리면 마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사망 사고의 약 80%를 차지하는 영세 업체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중대재해는 실효성 없는 규제가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대재해 원인을 기업에서만 찾는 것은 안일하고 무책임한 시각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기업의 안전 문화를 위해서는 규제 기관부터 안전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엉성하고 조잡한 정책이 기업의 안전 문화를 저해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지만 정부의 반성과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에 대한 사후 서비스(AS)와 리콜이 있을 리 만무하다.
아무리 준법 의지가 있더라도 지킬 수 없는 법규를 막무가내로 지키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불의이자 재해 예방의 걸림돌이다. 산업안전 법규에는 무리한 규정이 넘쳐난다. 이를 정비하지 않고는 제재를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재해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이행 불가능한 법규부터 정비하고 예방 시스템을 충실히 마련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건설 사고의 경우 원인이 원청에 있을 수 있지만 발주자 또는 하청, 근로자, 장비 제조 업체에 있을 수도 있다. 누구의 책임인지는 사고 원인을 조사해봐야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원청의 잘못으로 단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접근은 헌법 원리인 책임 원칙에 위배됨과 동시에 사고 원인 분석을 잘못하게 돼 엉터리 처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진정성이 중요하다. 책임을 물을 범인 찾기보다 원인을 찾는 담론에 집중해야 한다. 과시용 정책은 금물이다. 복잡한 만큼 높은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교한 방법으로 올바른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과학적 접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제재 일변도의 정책은 근본적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는 권위주의 정부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정책 실패를 호도하는 수단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경험적으로 보면 안전에 무지할수록, 진정성이 없을수록 제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생색내기 제재만큼 손쉽고 경제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제재 만능주의가 포퓰리즘과 패키지로 움직이는 이유다.
무엇보다 예방 시스템 개편 없는 과잉 제재는 심각한 후과가 따른다. 산업안전 문제의 해결에는 과시·분노·증오보다는 진정성·과학·정교함이 요구된다. 무분별한 일벌백계는 사이다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형식적 대응을 불러오고 경제활동을 불필요하게 옥죄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정부의 올바른 접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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