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정'을 위해 돈바스 지역 양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피로써 지켜온 국도를 쉽게 내줄 수 없다는 국민 정서가 여전히 강하게 깔려있지만 장기화하고 있는 전쟁을 끝내고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땅을 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영토 양보를 결심하더라도 위헌은 아닌지, 어떤 절차를 통해야 하는지 정해진 것이 없어 혼란과 갈등은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8일(현지 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위해 하루 전 워싱턴에 도착했다고 알리면서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를 포기하도록 강요당하고 푸틴이 이를 새 공격의 발판으로 삼았을 때와는 다르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썼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동안 수십만 명의 인명을 희생하면서 싸워왔는데, 싸워보지도 않은 미점령지까지 통째로 넘겨준다는 데 큰 거부감이 있다. 올해 5∼6월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 여론 조사에 따르면 68%는 우크라이나 개별 영토를 러시아 땅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반대했고, 78%가 현재 러시아가 장악하지 않은 땅을 넘기는 데 반대했다. '사실상' 러시아 통제를 인정하는 데는 그보다 수용적이다. 43%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고 48%는 반대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장기화로 깊은 피로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라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야당 유럽연대당의 볼로드미르 아리에우 의원은 "젤렌스키는 양호한 경로가 전혀 없는 갈림길에 서 있다"며 "무한정 전쟁을 계속할 병력도 없지만, 젤렌스키가 땅을 양보한다면 이는 우리 헌법 파괴이며 반역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헌법상 '공식적 영토 이양'이든 '사실상 러시아 점령 인정'이든 가능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헌법에는 "현재 국경 내 우크라이나의 영토는 불가분하며 불가침하다"는 조항과 "주권과 영토의 불가분성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조항이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가 주권과 우크라이나 영토의 불가분성을 보장하는 사람"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영토의 변경 문제는 오직 전체 우크라이나 국민투표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돼 있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영토 변경에 합의할 수는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BBC는 공식 영토 이양은 의회의 승인이나 국민투표가 필요할 것이므로 공식 인정 없이 사실상의 통제권 포기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후자의 경우에도 어떤 정치적·법적 절차가 가능한 것인지는 미궁 속에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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