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초 중국 푸단대 연구팀은 고압 전기 사고로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은 37세 남성 환자의 뇌에 동전 크기의 무선 장치를 이식했다. 남성은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레이싱게임과 바둑을 즐겼고 인공 팔로 컵을 잡는 등 일상 동작도 시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지난해부터 BCI 장치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임상시험 첫 참가자는 “갇혀 있던 감옥에서 나온 기분”이라고 했다.
BCI는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도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프로그램을 구동할 수 있는 기술이다. 장애 극복부터 기억 강화까지 응용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뇌를 모방해 만든 인공지능(AI)은 이제 뇌를 이해하는 도구로 진화했다. 스위스 로잔공대는 쥐의 뇌 일부를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했고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1초간의 뇌 활동을 슈퍼컴퓨터로 40분 만에 재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2030년에 AI로 인간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 재현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실리콘밸리는 ‘디지털 불멸’ 프로젝트에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알토스랩스와 구글의 자회사 캘리코는 각각 노화 역전, 수명 연장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육체를 초월한 의식의 영속성이다. 철학계는 “기계와 하나가 된 존재를 여전히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인위적인 뇌 정보 저장과 조절이 가능해지면 손상된 뇌 기능 복구, 인지능력 향상, 기억 백업 등 의료적 혜택이 극대화될 수 있다. 하지만 해킹 위험, 프라이버시 침해, 기업 의존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뉴럴링크는 1024개의 전극이 달린 64개의 가느다란 실을 뇌에 삽입하는데 첫 환자에서 85%의 전극이 분리되는 사고가 있었다. 알고리즘 보정으로 기능을 유지했지만 신경의학 전문가들은 아직 회의적이다. 동물실험 과정에서 12마리의 원숭이가 뇌부종·정신증 등 이상행동을 보여 안락사된 사실이 드러나며 윤리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골드만삭스는 “2040년 의식 업로드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초기 비용이 100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자는 영생을, 가난한 자는 죽음을 맞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억을 저장하고 AI 비서에게 일정을 맡기며 클라우드에 지식을 보관한다. 스마트폰 없이 불안해 하는 현대인들은 이미 반쯤 디지털 존재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선택이다. 뇌공학과 AI의 융합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영생을 추구할 것인가, 한정된 삶의 의미를 소중히 다룰 것인가.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20년 전 스마트폰을 상상 못했듯, 20년 후 인류의 모습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뇌와 AI가 융합된 ‘호모 디지털리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뇌·의식·자아에 대한 탐구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류가 만든 기술은 역으로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그 안에서 어떤 미래를 발견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답은 아직 없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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