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재정적 타격을 안겼다. 관세 타격을 상쇄하기 위한 가격 인상과 미국으로의 생산 이전 모두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업계에서는 비용 부담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7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2분기 관세로 인한 손실 규모는 총 118억 달러(약 16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올해 순이익은 공장 가동을 중단했던 팬데믹 시기 이후 최저 수준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 4월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5월부터는 자동차 부품까지 관세 대상에 포함시키며 유럽·아시아 자동차 제조사들을 압박해왔다.
일본 도요타는 관세로만 2분기 영업이익이 30억 달러 줄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예상치보다는 14억 달러 줄었지만 여전히 큰 타격이다. 폭스바겐(15억 1000만 달러), GM(11억 달러), 포드(10억 달러), 혼다(8억 5000만 달러), BMW(6억 8000만 달러)가 뒤를 이었으며 현대차(6억 600만 달러)와 기아(5억 7000만 달러)는 총 11억 7000만 달러(약 1조 60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마쓰다·닛산도 각각 4억 7000만 달러 수준의 타격을 입었다.
WSJ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상위 10개 자동차 제조사의 올해 순익이 전년 대비 약 25% 줄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세 타격이 유독 컸던 도요타는 실적 전망치도 낮춰 잡았다. 내년 3월까지 이어지는 회계연도에만 관세 부담이 총 95억 달러(약 13조 원)에 달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44%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일본 주요 완성차 업체 7곳의 연간 영업 감소분을 연간 2조 6833억 엔(약 25조 원)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예상과 달리 자동차 업체들이 곧바로 가격 인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상당 기간 비용 부담을 안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가격을 섣불리 인상했다가 소비자 수요 위축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제프리스의 필립 후쇼아 애널리스트는 “먼저 가격을 올렸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표적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생산 이전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제조사는 동일 모델을 여러 공장에 나눠 병행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지를 옮기려면 대규모 설비투자와 공급망 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 정치 환경이 바뀔 수 있는 불확실성 속에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배경에서 일부에서 추진 중인 생산 이전도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GM은 40억 달러를 들여 현재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쉐보레 이쿼녹스와 블레이저를 미국에서 제조할 계획이지만 실제 전환은 2년 뒤에나 가능하다.
일부 업체들은 기존 미국 내 생산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쥐어짜기 전략’을 쓰고 있다. GM은 인디애나주 포트웨인 공장에서 픽업트럭 생산을 늘리는 대신 캐나다 생산을 줄여 올해 관세 비용의 10%를 상쇄한다는 방침이다. 닛산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의 생산을 일본에서 테네시주로 옮겼고, 혼다는 미국 공장에 추가 근무조를 투입해 생산량을 늘리는 안을 검토 중이다.
WSJ는 미국의 관세 부과가 자동차 산업의 ‘지역화’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유럽·중국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이 규제·기술·소비자 취향 차이로 점점 분리되면서 판매지와 가까운 곳에서 설계·제조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는 중형 SUV GLC 생산을 유럽에서 미국 앨라배마주로 이전했고, 중국 시장용 대형 SUV GLE는 중국 현지 생산으로 전환했다. 독일 완성차 업체인 아우디도 BMW·메르세데스벤츠 대비 미국 내 생산 비중이 작아 더 높은 관세를 부과받게 되자 미국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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