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욕설과 성희롱 등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통화 강제 종료’ 등 관련 대책을 마련했으나, 전국 지방자치단체 10곳 중 3곳은 아직도 이러한 조치를 시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6월 10일부터 24일까지 소속 지자체 129곳과 교육청 7곳 등 총 136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부 악성민원 종합대책 실태조사’ 결과를 8일 공개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민원인과의 통화를 자동 녹음하고 폭언이 발생하면 통화를 먼저 끊을 수 있게 하며, 위법 행위 법적 대응 전담부서를 지정하고 기관 차원 고발도 추진하는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책 시행 후 1년이 지났음에도 현장에서는 공무원 보호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거나 자리잡지 못했다는 게 노조 측의 지적이다.
조사 결과 지자체 27.1%, 교육청 57.1%는 악성 민원 대응 전담 부서가 없었고, 전담 인력이 없는 기관도 지자체 58.1%, 교육청 71.4%로 절반 이상에 달했다.
또 지자체 31.0%, 교육청 42.8%는 악성 민원 대응을 위한 기본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무원 노조는 "이는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악성 민원에 대한 법적 대응, 피해자 상담 및 보호 조치 등 종합적인 대처가 필요한 상황에서 실효성에 큰 의문을 제기한다"고 꼬집었다.
민원인의 욕설, 성희롱 등 발생 시 법에 따른 공무원 보호 조치 역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원 처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욕설이나 성희롱, 폭언이 있을 경우 통화를 강제로 종료할 수 있지만, 지자체 34.1%, 교육청 42.8%는 이러한 조치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강제 통화 종료를 실제 시행한 사례도 지자체는 40.3%, 교육청은 14.2%에 그쳤다. 노조 관계자는 "전화를 끊어도 '왜 끊냐'면서 계속해서 전화가 오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전했다.
녹음 전화 설치율은 지자체 89.1%, 교육청 71.4%로 높았으나, 자동 녹음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 녹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반복 민원을 종결할 수 있는 부서장 권한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지자체 37.2%, 교육청 57.1%가 부서장 판단으로 반복 민원 종결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이외에도 안전 요원 배치에 있어 청원 경찰이 아닌 공무직 등 부적합 인력이 투입돼 현장 대응력에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공무원 노조는 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악성 민원 대책의 전면 보완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 대책으로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현장의 냉정한 평가는 '형식적 이행'에 그치고 있다"며 "현재 방식으로는 제도가 현장에 제대로 정착되는 것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악성 민원 전담 부서 신설 및 전담 인력 배치 의무화 △통화 종료, 퇴거, 고발 등 대응 매뉴얼 전 기관 배포 △민원 담당자 보호 조치 이행 여부 정기 조사 실시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노조는 "민원 공무원의 안전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까지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책임 있는 자세로 실질적인 대책 보완에 나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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