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약사회가 제약사들의 다이소 건강기능식품(건기식) 판매를 조직적으로 막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본격적인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약사단체가 유통 경로를 문제 삼아 가격 경쟁력을 갖춘 건기식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켰다면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대한약사회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담긴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발송했다. 공정위가 사실상 대한약사회의 위법 가능성을 인정하고, 향후 전원회의 등을 거쳐 제재 수위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양약품, 대웅제약, 종근당건강 등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전국 200여개 다이소 매장에서 다이소 전용 건강기능식품을 출시했다. 한 달 분 기준 3000~5000원대 가격으로, 약국 건기식 대비 5분의 1 수준이라는 가성비에 힘입어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다이소 유통 시작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이들 제약사들은 초도 물량만 소진한 뒤 추가 납품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식 철수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대한약사회 측의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정황이 꾸준히 제기됐다.
공정위는 이 같은 정황에 따라 3월 대한약사회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섰고, 이후 입수한 자료와 진술을 바탕으로 이번 심사보고서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법 제23조는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거나, 부당하게 다른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사업자단체인 대한약사회가 개별 약사들에게 납품 제약사에 대한 불매를 유도하거나, 제재성 지시를 내렸을 경우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조항 위반 소지가 있다.
실제로 당시 대한약사회는 성명을 통해 “유명 제약사들이 약국 유통 신뢰를 악용해 생활용품점에서 약국보다 저렴하게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며 “신속한 시정”을 촉구했고, 일부 개별 약사들은 “불매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또 대한약사회는 이에 대해 “건강기능식품 유통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의견 개진”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진행 중인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법 위반이 밝혀질 경우 엄정한 제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유통 자유화 흐름 속에서 전통적 유통채널과 새로운 판매 경로 간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유통 다변화는 소비자 가격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기존 업계 이해관계자와의 충돌을 불러올 수 있어 공정위 판단이 업계 전체에 중대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대한약사회 측의 의견서 제출 등 절차를 거쳐 향후 전원회의를 통해 최종 판단을 내릴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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