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이 의료계와 헬스케어 산업뿐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최대 화두가 됐다. 많은 대중매체와 서적들은 인류가 맞이하게 될 거대한 변화의 서막을 제시한다. 기술의 발전과 도입을 막을 수 없는 만큼 AI로 인한 변화를 거부하거나 막연한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AI 석학들은 하나같이 ‘AI를 잘 쓰는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 격차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AI가 거의 모든 일자리를 빼앗아 인간이 AI에 종속되는 디스토피아 공상과학(SF) 영화를 자주 접했던 탓일까. 인간과 AI가 맞붙는 ‘인간 대 AI’ 구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상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미래의 경쟁은 ‘인간 대 AI를 활용하는 인간’의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AI는 고고한 지능이 아니라 ‘저렴하고 신속한 지능’에 가깝다. 고용주 입장에서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부 코드의 30%를 AI로 작성하고 있으며 개발자 3000명을 해고한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 AI가 인간 지능을 완전히 능가하면서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른바 ‘AI 특이점’이 5~10년 안에 온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직업의 종말이 아닌 ‘업무 수행 방식의 근본적 재편’이다. AI가 할 수 없는 일을 증명하거나 AI를 능숙하게 지휘하는 유인력(pulling power)을 가진 인재가 각광받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필자와 비슷한 아날로그 세대들에게는 상대방이 ‘사람’이기를 바라는 영역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더욱 높아진다. 예컨대 깊은 공감과 소통, 윤리적 판단, 창의적 영감이 필요한 분야들이다. 라이브 공연의 열기, 성직자의 심리적 위로처럼 인간의 서사와 감동이 필요한 영역은 상당 기간 AI가 대체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 의료 분야가 있다. AI는 인류의 건강한 삶을 연장하는 가장 강력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전문의의 경험에 의존했던 진단 영역은 AI의 데이터 분석 능력으로 혁신을 맞았다. 망막 스캔 영상에서 당뇨병성 망막증을, 흉부 엑스레이 영상에서 초기 폐암 결절을 인간보다 높은 정확도로 식별해낸다. 환자의 유전체 염기 서열과 생활 습관, 의료기록을 종합 분석해 특정 항암제의 반응성을 예측하고 최적의 약물을 추천하는 ‘초개인화 정밀 의료’가 보편화되고 있다.
신약 개발도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다. 단백질 구조 예측 모델이 신약 타깃을 발굴하면 생성형 AI가 수백만 개의 후보 약물을 가상으로 스크리닝하면서 수년 걸리던 프로세스가 수개월, 수십 일로 단축됐다. 수술실에서는 의사의 손 떨림을 보정하는 로봇의 눈과 손이 되는 동시에 뇌파 및 근전도 등 생체 신호를 실시간 분석해 위험을 미리 경고하는 ‘수술 동반자’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의무기록 작성, 환자의 증상 일기 등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하고 효율적인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의료진이 소모적인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최적의 질병 진단과 치료라는 의료의 본질에 집중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가올 AI 시대는 사회의 모든 규칙과 시스템을 다시 세팅할 것을 요구한다.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려면 기술을 이해하고 인간 고유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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