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진행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의 과반 의석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면서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마저 과반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자민당의 연정 확대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일본 정치 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 정치학 교수는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이시바 총리가 계속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그의 리더십은 상당히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지지율 개선에 대한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참의원 선거는 의원 248명의 절반인 124명을 3년마다 뽑는 형태로 치러진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궐 의석 1석을 포함해 지역구 75명, 비례대표 50명 등 총 125명이 선출됐다.
자민당 역대 최소 의석 기록 깰 수도
NHK와 요미우리신문·니혼TV의 공동 출구조사 결과 ‘50석 획득’을 목표로 한 자민·공명 여당은 자민당 27~41석, 공명당 5~12석을 얻어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과반 의석수 유지를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은 50명 이상을 당선시켜야 한다. NHK는 “여당의 과반 확보가 어려운 정세”라며 “자민·공명 양당의 획득 의석이 1999년 연립정부 출범 이후 가장 적었던 46석을 밑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자민당의 경우 역대 최소인 1989년 36석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사히신문의 출구조사에서도 자민당은 34석 전후, 공명은 7석 전후를 획득할 것으로 예상돼 40석대에 머물 가능성이 점쳐졌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밤 자민당 본부에 차려진 개표상황실을 찾아 “선거 결과를 매우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퇴진 등 책임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아 가볍게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현재 물가 대책이나 국가 안보 등 나라를 위해 해야할 책임이 있다”며 “비교 제1당의 의석수를 얻은 당으로서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임기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은 출구조사 결과를 받아든 뒤 “고물가 대책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반성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반해 야당의 선전은 두드러졌다. 국민민주당은 선거 전 4석에서 14~21석으로, 참정당은 기존 1석에서 10~22석으로 의석을 대폭 늘릴 것으로 전망됐다. 참정당이 10석 이상을 얻으면 일본 정치사상 극우 정당으로선 처음으로 단독 법안 발의 가능 의석수(10석)를 확보하게 된다. 자민당에서는 이시바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터져나오고 있다. 자민당 당직자는 “지난해 중의원 선거, 이달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 부진은) 스리아웃”이라며 “이시바 총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고전’…취약점 누적
자민당의 패인은 복합적이다. 2023년 말 불거진 당내 파벌의 비자금 스캔들이 발목을 잡은 가운데 핵심 현안인 고물가 대책으로 ‘현금 지급’ 외에 이렇다 할 카드를 내놓지 못했다. 여기에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아부의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고개를 숙였지만 관세율이 외려 높아지자 국민들의 실망감이 컸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와 지난달 도쿄도의회 선거 연패로 정권에 대한 불신이 확인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NHK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1%로 한 달 전(39%) 대비 8%포인트 급락했으며 자민당 지지율 역시 24%로 2012년 12월 정권 재탈환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야당은 소비세 인하와 사회보장 개혁 등 민생 이슈를 부각하며 부동층을 끌어안았다. 특히 ‘외국인 규제’를 비롯해 극우 정책을 내건 참정당이 득세하며 자민당 보수표 일부를 흡수한 것도 뼈아팠다는 지적이다. 2020년 인터넷을 통해 설립된 참정당은 경기 침체와 생활고에 대한 국민 불만을 외국인 문제로 돌리고 이들에 대한 생활 보호 지급 중단, 토지 매입 규제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여기에 일본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육을 강조하고 동성혼에 반대하면서 보수층의 표심을 파고들었다.
과반 달성 상관없이 재신임 요구 거세질 듯
선거 과정 내내 민심과의 괴리를 보인 이시바 정권은 연립 여당이 과반 유지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재신임 요구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참의원 선거 직후에는 총리 지명투표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총리직 유임이 가능하지만 자민당 내부에서부터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며 퇴진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이시바 총리가 관세 협상 연속성과 정치 안정 필요성을 내세워 자리를 고수할 수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시바 총리가 스스로 그만두지 않으면 정권 유지는 가능하지만 당내에서 거세질 퇴진 압박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민당이 새 총재를 선출하고 총리 지명투표를 거쳐 정국 수습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총리 지명 선거에서 야당들이 공동 전선을 형성해 특정 인물을 총리로 내세울 경우 정권 교체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쉬운 카드는 아니다. 야권이 ‘내각 불신임안’을 통해 정권을 흔들 수도 있다.
존재감 커진 野, 소수정권에서 연정 확대 불가피
자민당으로서는 연정 확대나 야당 의원 영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연립 협상에 따라 자민당 이외의 당에서 총리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연정 상대로는 입헌민주·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이 거론된다. 다만 자민당 내에서는 “정책 전체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부분 연대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있는 만큼 정국 혼란이 길어질 수도 있다. 8개 야당이 뭉칠 수 있느냐 역시 변수다. AP통신은 “주요 야당 그룹이 분열돼 있는 만큼 공동의 목소리를 내면서 실행 가능한 대안을 통해 유권자 지지를 얻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연휴 중간 날 투표’ 첫 사례, 사전 투표↑
한편 이번 선거의 사전투표자 수는 전체 유권자의 25.12%인 2618만 186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본투표 날짜가 사흘 연휴의 중간 날로 지정되면서 일찍 투표를 끝내고 연휴를 즐기려는 유권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투표는 토요일과 ‘바다의 날’ 공휴일 사이에 진행됐는데 연휴 중간에 국정 선거 투표·개표가 치러지는 것은 보궐선거를 제외하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야권에서는 공휴일에도 투표하러 가는 경향이 큰 여권 지지자를 의식한 선거일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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