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신임 부위원장에 남동일 상임위원이 27일 공식 취임했다. 남 부위원장은 별도의 취임식이나 메시지 없이 이날 오전 9시 30분 열린 홍보 및 정책 조정회의를 주재하며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조용하고 실무 중심의 스타일을 고수한 그의 첫 행보에 공정위 안팎에서 큰 기대가 흘러 나온다.
남 부위원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을 뿐 별도의 취임사는 내놓지 않았다. 통상 장·차관의 경우 취임과 동시에 취임사나 소감을 밝히는 것과 달리 겸손하면서도 조용히 업무를 시작하는 실무형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동일 부위원장은 1969년생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다른 고위공직자와 달리 지방고시 2회로 1997년 공정위에 입직했다. 그는 공정위 기업집단과장, 가맹거래과장, 소비자정책과장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 최근에는 경쟁정책국장, 소비자정책국장, 사무처장 등 정책 수립과 집행을 모두 경험하며 내부 평가에서도 신망이 매우 높다.
남 부위원장은 사무처장 재임 당시인 2024년 7월 배달 플랫폼 수수료 개선을 위한 상생협의체 출범 과정에 핵심 역할을 했으며 관계부처 특별위원으로 참여해 배달앱 수수료 체계 개편의 실마리를 마련한 인물로 꼽힌다. 당시 배달앱 차등 수수료안이 일부 도입되면서도 입점업체와 점주의 반발로 ‘반쪽 성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려 한 노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거기에다 공직사회에서 그의 검소함에 대한 높은 평가도 나왔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내부 소통력과 현장 대응 능력을 고루 갖췄다는 점에서 내부에서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면서 “청렴, 전문성, 인품을 모두 갖춘 정책통이다”고 말했다. 실제 간부평가에서 여러 차례 1위를 기록할 만큼 조직 내부 신망도 두텁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남 부위원장은 공정위의 대표적 정책통으로 화합의 리더십으로 통하는 인물"이라며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경제를 실현해 플랫폼 경제 시대에 걸맞은 공정 경제 질서를 확립할 적임자"라고 밝혔다.
남 부위원장 취임으로 공정위의 플랫폼 규제 정책 방향에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사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공정위는 업계 우려와 한미 통상 갈등 등을 이유로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 추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선회했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공정거래법 개정 대신 다시 온플법 제정이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온플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민주당 선대위가 발간한 공약집에 따르면 △입점업체 보호 및 상생협력 강화 △거대 플랫폼 독점 폐해 방지 △소비자 피해 예방 등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온플법은 국내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로 역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반발이 크다. 중국의 테무나 미국의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규제만 강화될 경우 시장 위축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 부위원장의 정책 조율 능력으로 이 같은 비판과 우려를 얼마나 불식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최근 국정위 업무보고에서 △공정한 플랫폼 생태계 조성 △기술탈취 근절 △하도급 대금 보호 △가맹점주 권익 강화 등을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또 △결혼중개 서비스 가격 투명화 △헬스장·필라테스 ‘먹튀’ 방지 △키오스크·배달 수수료 논란 해소 등 소비자 민생 현안도 다뤘다. 남 부위원장 체제에서 이 같은 과제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조용하고 실무에 집중하는 스타일의 남 부위원장이 새 정부 철학에 맞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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