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월당의 귀환은 온전한 건축유산의 첫 귀환이자 문화유산을 매개로 상호 존중과 공감의 가치를 실현한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이뤄진 이번 귀환이 양국 간 문화 연대와 미래지향적 협력의 상징이 되기 바랍니다.”(최응천 국가유산청장)
“대학 교수이자 고고학자로서 20년 전 고토쿠인(고덕원) 주지로 취임한 때부터 관월당의 최적 보존을 위해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관월당이 한국으로 돌아간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사찰에 방치돼 있던 조선 후기 건축물 관월당(觀月堂·일본 측에서 붙인 이름, 원래 이름은 알려지지 않음)이 10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국가유산청은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일본 소장자인 고토쿠인 주지 사토 다카오와 약정을 체결하고 고토쿠인이 보존·복원을 위해 해체하고 한국에 이송한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본에 유출된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 온전한 하나의 건물을 돌려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월당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조선 왕실 구성원의 사당으로 추정되는 목조 건축물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무렵 한양(서울) 내에 세워졌는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식산은행이 스기노 기세이라는 인물에게 증여한 뒤 1924년 일본으로 반출됐다. 이후 도쿄를 거쳐 1934~1936년 도쿄 인근 가마쿠라시의 사찰인 고토쿠인에 기증돼 현재까지 기도처로 활용됐다.
관월당의 귀환은 한일 양국의 적극적인 협조와 상호 이해가 빚어낸 성과다. 사토 주지는 ‘조건 없는 기증’으로 해체 및 운송 비용까지 자비로 부담했다고 한다. 해체 및 운송 작업은 한일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동 협업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됐다. 이날 국가유산청이 ‘환수’라는 표현 대신 ‘일본에서 귀환’이라고 했을 정도다.
국내 연구 결과 관월당은 대군(大君·왕자)급 사당 규모에 해당한다. 기와에 사용된 용문, 거미문, 귀면문, 박쥐문 등과 화려한 단청은 왕실 건물의 높은 위계를 보여준다. 다만 건물 해체 때에도 상량문 등 건립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원래 명칭과 위치, 배향 인물 등은 지속적인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에 반입된 관월당 부재는 현재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근대 건축 및 도시 변화를 연구해 온 이경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물 규모와 위상 등을 고려할 때 관월당이 궁궐 내 건축물이었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관월당이 원래 있었던 곳으로 오늘날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광장이 된 순정효황후 본가 터(조선식산은행 사택 터), 통의동 일대의 창의궁 터(동양척식은행 사택 터), 과거 월궁이라 불렸던 월성위궁 터 등 3곳을 제시하면서 이중 열린송현 광장 어딘가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관월당의 복원을 추진하면서 복원 장소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있던 곳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우선인데 기존 건물 때문에 해당 지역에 복원이 안 된다면 다른 지역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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