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마약·뇌물 등 중대범죄의 자금 흐름을 끊기 위한 ‘자금세탁범죄’ 양형기준이 처음으로 신설된다. 영상 조작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법 개정 취지를 반영해 강화한다.범죄를 보다 엄정하게 다루고, 피해자 보호 중심의 양형 체계를 정비하겠다는 취지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산하 제10기 양형위원회(위원장 이동원)는 23일 제139차 전체회의를 열고, 임기 2년 동안 신설 및 수정할 양형기준 대상 범죄군을 확정했다. 이번에 새 기준이 신설되는 범죄는 자금세탁, 응급의료방해, 2회 이상 음주운전 등이며, 디지털 성범죄, 무고, 증권·금융범죄, 불법 사행성 게임물, 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범죄는 기존 기준이 전면 손질된다.
자금세탁의 경우, 보이스피싱과 마약, 뇌물 등 중대 범죄의 자금 흐름을 은폐하거나 합법화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며, 형사사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처벌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징역형이 선고된 자금세탁 사건은 1100건을 넘는다.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사례처럼 국제적 공분을 샀던 사건도 있었다. 해당 사이트는 다크웹을 통해 전 세계에 아동 성착취 영상을 유통한 플랫폼으로, 운영자 손정우는 비트코인으로 이용자에게 결제를 받고 이를 통해 수억 원대 범죄수익을 세탁한 정황이 확인됐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이 선고되자, 자금세탁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디지털 성범죄 중에서는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유포 등 허위영상물 범죄가 주요 수정 대상으로 꼽혔다. 관련 범죄의 법정형이 최근 상향됐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목적 대화죄, 협박죄 등의 처벌 규정이 잇따라 신설되면서, 기존 양형기준으로는 범죄의 중대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양형위는 허위영상물 유포의 목적과 수익 여부, 피해 회복 상황 등을 기준으로 권고 형량을 현실화할 방침이다.
무고죄와 대부업·채권추심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대폭 손본다. 특히 대부업 관련 범죄는 최근 불법사채, 고금리 수취, 가족과 지인을 대상으로 한 악질적 추심 사례가 늘며 국민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해당 범죄를 공갈·강요죄 등 유사 범죄와 비교해 형량을 조정하고, 10년 이하 징역으로 강화된 현행 법정형 수준에 맞게 기준을 재설계하기로 했다.
증권·금융범죄도 수정 대상이다. 2012년 양형기준이 도입된 이후 10년 넘게 손질되지 않은 채 유지돼왔으나, 시세조종죄의 법정형 상향(10년 이하 → 1년 이상 유기징역)과 공매도 관련 처벌 규정 신설 등 자본시장법의 변화가 반영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불법 사행성 게임물 범죄는 온라인 도박의 중독성과 청소년 대상 범행의 확산에 대응해, 무허가 카지노 운영, 유사경마 등 구체적 행위 유형별로 형량 상향이 추진된다.
양형위는 이와 함께 전체 범죄군에 걸쳐 피해 회복 관련 양형인자도 정비한다. 그간 양형기준에서 ‘(공탁 포함)’이라는 표현이 마치 공탁만 하면 감경 사유가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를 삭제하고 구조금·보험금 등 유사한 회복 방식까지 포괄하는 체계적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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