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얼굴을 한 로봇이 하품하자, 이를 본 침팬지가 그대로 따라 하품했다. 하품 전염 현상이 인간뿐 아니라 로봇을 매개로 동물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5일(현지시간) 세인트 조지 런던대 의대 연구팀은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스 리포트』에 침팬지가 사람 얼굴을 한 안드로이드 로봇이 하품하는 표정을 흉내낸다고 발표했다. 영장류가 무생물 모델로부터 하품이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입증한 사례다.
연구팀은 스페인 모나 재단 영장류 보호소에 있는 14마리의 성체 침팬지(10~33세)를 대상으로, 사람의 표정을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머리를 제작해 실험에 나섰다. 이 로봇은 33개의 회전 모터로 표정을 만들 수 있으며, 하품하는 얼굴, 입을 반쯤 벌린 얼굴, 무표정 얼굴 등 세 가지 표정을 10초간 유지할 수 있다.
실험 결과, 로봇이 하품을 할 때 14마리 중 8마리의 침팬지가 하품을 따라했다. 일부는 하품 이후 눕거나 침구를 모으는 행동도 보였다. 반면 입을 약간 벌린 경우에는 반응이 줄었고, 무표정일 때는 행동 전염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눕는 행동 역시 하품 조건에서만 나타났다.
연구팀은 “하품이 전염되는 이유를 아직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진화적으로 오래된 의사 소통 역할을 해왔을 가능성이 크다”며 “하품이 자동 반응을 유발하는 것을 넘어, 졸음 행동을 초래하는 것에 비춰봤을 때 휴식 신호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연구는 인간과 동물이 사회적 상호작용 방식을 어떻게 발달시켰는지 더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하품 전염은 포유류와 일부 어류에서 관찰되며,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잘 전염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 피사대 연구에 따르면 친밀한 상대의 하품에는 더 잘 반응하는 반면, 공감 능력이 낮을수록 하품 전염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향후 “로봇의 다른 행동이 동물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염되고, 인간의 반응과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를 밝히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칼보-메리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심리학, 로보틱스, 동물행동학 간의 학제 간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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