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을 중단하는 법원 판결이 하루 만에 효력을 일시 상실했지만 시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시장은 관세를 둘러싼 법적 공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관세 정책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다만 상호관세의 위법여부, 정책 조정 여부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 확대는 불가피해졌다.
29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17.03포인트(+0.28%) 오른 4만2215.7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23.62포인트(+0.405) 상승한 5912.17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74.93포인트(+0.39%) 오른 1만9175.87에 장을 마감했다.
전날 엔비디아의 호실적으로 매그니피센트7(7개 주요 대형기술주)는 알파벳과 애플을 제외하고 5곳이 올랐다. 엔비디아는 3.25% 올랐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는 0.29% 상승했다. 아마존과 테슬라도 각각 0.48, 0.43% 올랐으며 케나플랫폼은 0.23% 상승했다.
‘상호관세 위법’ 판결 하루 뒤 항소법원 “1심 판결 효력 일시 중지”
전날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 재판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를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시장은 상승 출발했다. 세계적 무역 전쟁의 강도가 약해지고 관세로 인한 미국 경제와 기업 실적 압박도 줄어들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다만 백악관과 월가 주요 기관들이 공통적으로 제도적 우회로를 이용해 관세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란 분석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기대감은 점차 하락했다. 다우지수와 S&P500은 장중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하기도 했다.
모건스탠리의 리서치 총괄인 마이클 제자스는 “어제의 관세가 내일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행정부가 관세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많다”고 진단했다. 전날 법원이 문제 삼은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로 활용한 비상경제권한법(IEEPA)이다. 다만 월가는 IEEPA가 아니더라도 무역법 122조 등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해 관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를 테면 무역법 122조의 경우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최대 15%의 관세를 150일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화당이 의회 다수인 만큼 각국에 대해 최대 15%의 관세는 부과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밖에 슈퍼301나 232조의 경우 기한 제한이 없이 더 높은 관세율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로 꼽힌다.
장 종료를 앞두고 상황은 다시 반전을 맞았다.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전날 1심 판결의 효력을 중지하고 행정부의 관세 정책 효력을 유지하도록 보전(stay) 처분을 내리면서다. 이번 명령은 1심 판결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결정으로 항소심의 심리 전 긴급 상황을 통제하는 성격의 조치다. 항소심에서 관세의 적법성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며 추후 항소법원이 정식 효력 중단 명령이나 판결 등 별도의 조치를 내리기 전까지 적용된다.
시장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항소법원의 결정이 보도된 직후 S&P500은 약 5포인트 가량 하락하는 데 그쳤다. 투자자들은 이미 백악관이 무역법 232조나 301조 등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해 관세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관측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관세 정책이 지속되더라도 지난달처럼 고강도의 관세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도 시장을 떠받친 것으로 보인다.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걸 교수는 법원 결정이 시장의 기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시장은 이미 4월 2일의 상호관세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각국에 10%의 기본 관세 수준으로 안정된다면 시장은 30%의 중국관세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엔비디아 실적을 통해 인공지능(AI) 수요가 여전히 크다고 확인된 점도 증시 상승을 이끈 요인으로 꼽힌다. 메인 스트리트 리서치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제임스 데머트는 “엔비디아의 강력한 실적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투자자의 낙관론을 되살리고 투자자들이 관세나 세금 이슈보다 AI의 힘에 집중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펼쳐질 일은 불확실성과 혼란”…다시 오른 ‘금’
이날 시장이 상승세를 유지한 것과 별개로 월가는 장기적으로 정책과 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고 평가했다. 관세 정책이 유효할 지, 뒤집힐지, 뒤집힌다면 새로운 법적 근거를 이용해 어느 정도의 강도로 관세가 부과될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울리케 호프만 부르차르디는 “무역과 재정 정책 관련 소식으로 앞으로 시장 변동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앞으로 12개월로 보면 미국 주식은 여전히 상승하겠지만 단기 상승폭은 더욱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월가는 상호관세의 위법 가능성은 줄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날 항소법원의 결정과는 별개로 비상경제권한법(IEEPA)를 근거로 한 관세 조치를 차단하는 또다른 판결이 내려지면서다. 이날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의 루돌프 콘트레라스 판사는 일리노이주의 교육용 장난감 업체 러닝리소스와 핸드투마인드 2곳이 제기한 소송에서 관세 부과를 중단하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이 판결은 원고인 2개 업체에만 적용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항소 법원이 결국 하급심 판결을 지지하고 트럼프 관세 정책을 저지할 가능성은 드리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불확실성은 관세를 넘어 재정적자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바클레이즈에 따르면 “(관세 무효 판결은) 더욱 즉각적인 세수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정부의 관세 수입 전망이 불확실해져 미국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달하는 이른바 ‘엑스데이트(X-date)’의 시점을 가늠하기 힘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는 의회의 예산안 통과 마감 기한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에 추후 정부의 재정 불안감이 확대될 수 있는 요인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은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이날 금은 2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멈추고 온스당 0.7% 오른 3317.10달러에 거래됐다. 미즈호증권USA의 로버트 야거는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로 불확실성과 혼란”이라며 “이것이 바로 안전 자산인 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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