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10곳 가운데 7곳은 탄소중립 대응이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기후 정책 드라이브가 한풀 꺾인 지금이 기술 격차를 줄일 적기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3일 발표한 '국내 기업의 탄소중립 대응 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국내 탄소 배출량 상위 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400곳의 69.6%는 탄소중립 대응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파리협정 탈퇴 등 글로벌 기후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실시됐는데, 2022년 34.8%, 2023년 68.8%, 2024년 60.3%와 비교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응답 기업의 91%는 공급망 탄소 규제가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 기업의 43%는 공급망 내 고객사로부터 이미 탄소 배출량 산정과 감축 요구를 받았다고 답했다. 요구 사항(복수응답)으로는 탄소 배출량 정보 제출(84%)이 가장 많았고, 탄소 감축 이행(58%), 재생에너지 사용(37%) 등의 순이었다.
미국의 기후 정책은 주춤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탄소중립 방향성은 여전하다는 얘기다. 대한상의는 선진국이 잠시 주춤하는 현 상황을 탄소중립 핵심기술 분야의 격차를 줄일 기회라고 판단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2 기술수준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요 탄소중립 핵심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76∼86% 수준이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이용(CCUS)과 풍력발전기술은 5년, 소형모듈원자로(SMR)는 4년의 기술 격차를 보이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탄소중립 핵심기술 격차로 해외 의존도가 증가할 경우 산업 전환 비용이 커지고 고부가 녹색산업의 성장과 국제 규범의 주도권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기술 격차를 줄이는 것은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 국가적인 미래 성장 기반을 구축·선점하는데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1기(2017∼2021년)에서 미국의 기후테크 산업은 파리협정 탈퇴 등 기후정책 후퇴에도 오히려 성장했다. PwC 등에 따르면 미국 기후테크 투자는 2016년 60억달러에서 2020년 160억달러로 증가했으며, 탄소 제거 관련 기업 수도 5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국내 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84.5%는 탄소중립 투자 리스크가 높다(매우 높다 15.2%, 높다 69.3%)고 봤다. 특히 미래 연료인 바이오디젤에 선제 투자한 중소기업이 수요 부족과 원재료인 팜유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탄소 중립에 선도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수익성 악화를 겪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실제 기업 현장에서 불확실성으로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명확한 정책 방향과 지원으로 투자 리스크를 줄여주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5대 정책 과제로 △가칭 '탄소중립 산업전환지원법'(GX 추진법) 제정 △탈탄소 전환금융 도입 △저탄소 제품·서비스 시장 조성 △안정적인 무탄소 에너지 공급 기반 구축 △자발적 탄소시장(VCM) 활성화를 제언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정부는 기업이 탄소중립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 시장형성 등을 적극 지원해 리스크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