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비수도권 한 지역을 취재차 찾았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나와 승용차로 약 20분 거리인 군청이 있는 중심가에 닿을 때까지 눈에 띈 사람은 단 두 명뿐. 추수가 끝난 들녘은 물론 버스 정류장, 상점 앞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중심가에서 만난 이에게 “오는 길에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 묻자 “젊은이들은 도시로 가고, 그나마 거동이 자유로운 어르신들은 거의 저기 계신다”며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은 바로 파크골프장이었다.
파크골프가 전국적으로 인기다. 도시·농촌 가리지 않고 구장마다 동호인으로 넘친다. 일반 골프와 달리 채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고 상당수 구장 이용료는 무료 또는 몇 천 원에 그치는 등 낮은 진입장벽이 그 이유 중 하나다.
동호인들의 ‘파크골프 예찬’도 상당하다. ‘파크골프 덕분에 활력을 되찾았다’는 사연은 기본이다. 파크골프를 시작한 뒤 ‘약과 링거를 싹 끊었다’거나 ‘관절염이 나았다’ ‘암을 이겨냈다’ 같은 흡사 간증 수준의 경험담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잔디 위를 1만 보 가까이 걸으면서 대화하고 교류한 결과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을 찾았다는 얘기다. 이런 장점 덕일까. 은퇴한 시니어는 물론이고 농어촌에서는 비교적 젊은 40~50대까지 파크골프에 빠져드는 추세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파크골프장 조성에 나서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극심한 인구 감소로 전국 기초 지자체의 절반이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요즘, 출생률을 높이고 청년 유입을 늘리는 일 만큼이나 고령층의 건강한 노후 보장 역시 지역 소멸을 막는 중요한 대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도권이다. 동호인은 급증하는데 파크골프장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례로 서울 인구 수는 대구의 4배지만 구장은 13곳으로 대구(34곳)의 3분의 1에 그친다. 몇몇 지자체는 하천 둔치 등에 조성을 추진하지만 하천 오염 방지, 치수 관리의 책임이 있는 환경청의 제동에 번번이 막히고 만다. 일부는 도심 속 공원에 파크골프장을 조성하려다 주민들의 반발로 뜻을 접기도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내년까지 77곳 조성’을 공언했지만 서울 어느 곳에 더 들어설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대로라면 갈 곳 없는 동호인들이 전철로 왕복 3~4시간 거리인 타 시군으로 ‘원정’을 다니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해가 우려된다면 시설물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구장을 조성하고 하천 오염이 걱정된다면 지자체가 책임지고 농약 사용을 철저히 막으면 어떨까. 중앙정부가 구장 조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고 이에 따라 각 지자체가 구장을 조성, 관리한다면 난개발 걱정도 덜 수 있다. 파크골프의 확산은 젊은 세대에도 이득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건강한 시니어가 늘수록 건강보험 재정이 나아지고 생산가능인구의 부양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일방적인 반대보다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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