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대북 유화 정책을 펴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기초한 평화 추구 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핵 폐기를 주장했고 결국 남북 관계는 경색됐다. 북한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전력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6·3대선 이후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대북 정책을 비롯한 외교안보 정책을 어떻게 펼쳐야 할까. 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는 핵·미사일, 사이버 공격 등 북한의 안보 위협을 막아내면서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굉장히 어렵지만 북한의 변화를 재촉하면서 대화하고 경제 협력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면서 북러 밀착이 속도를 내고 있는데.
△북러 밀착은 김정은 정권이 국방력과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정책의 연속선에서 볼 수 있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정면 돌파’를 언급하면서 핵무기 고도화를 시도했다. 2022년 즈음에는 국제 질서 다극화, 신냉전 흐름에 맞춰 북한의 지위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2024년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핵·미사일은 물론 재래식무기까지 고도화하는 전략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북한 국가 전략의 핵심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우선 러시아·중국으로부터라도 확고히 인정받고 이를 토대로 이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 같다.
-김정은 정권의 13년을 평가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을 추구했고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아버지 김정일은 핵보유국이 될 건지 말 건지를 놓고 벼랑 끝 전술을 쓰면서 미국과 거래해 정치·경제적인 이득을 얻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예 핵무기를 확고히 가진 후 거래하는 것을 추구했다. 2013년에 핵·경제 병진 노선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핵무기 개발을 지속했고 2017년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후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잠시 경제에 집중하는 듯하다가 2019년 하노이 회담 실패 후 다시 핵무기 강화 전략을 펴왔다.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거래에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김정은은 2016년부터 핵 군축을 원한다는 발언을 해왔다. 또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반북(反北) 대립 정책을 포기하고 남쪽에 배치된 전략자산을 빼내고 마지막에는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한미군 철수,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빠진 후 한반도 문제 해결을 주도하고 최상위 목표인 북한 주도의 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2023년 말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왔고, 통일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북한 주도의 통일이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쪽을 상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상대하는 데 남쪽은 빠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가 2021년 조선노동당 8차 당 대회에서 밝힌 ‘국방과학발전·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인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는가.
△북한이 지난 5년 동안 끊임없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것은 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지시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핵탄두 소형화, 전술핵무기 등에서 핵무기 고도화를 상당히 이룬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는 목표를 이루려는 것들이다.
-8차 당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마련했는데.
△2023년부터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고 농업 생산량이 증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19나 제재 여파로 성장에 한계가 있어서 이전 5개년보다 좀 나은 수준이다. 북한은 김일성 시기부터 국방·경제 병진 노선을 내세웠지만 항상 주안점은 국방에 뒀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북한에 도입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은 영토가 넓어 일부 지역에 자본주의를 도입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지만 북한은 좁아서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또 개혁·개방을 하면 남한의 돈이 가장 많이 들어오게 돼 북한 주민들의 사상이나 생각이 훨씬 빨리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세습 체제 때문에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소련이나 중국도 개혁·개방 당시 전임 지도자를 밟고 사회를 바꿀 수 있었지만 북한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주체사상과 자력갱생을 계속 얘기한다. 세습 체제의 변화가 있어야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 권력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당 조직비서인 조용원이 최근 2개월 동안 잠행해 북한 권력 지도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고위층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특정인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 예전부터 해온 김정은의 전형적인 용인술로 보인다.
-북한 주민들의 민심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그리고 장마당이 체제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을까.
△소위 장마당이 늘어나면서 북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장은 물건과 함께 정보가 유입되는 곳이고 장마당도 그런 역할을 한다. 북한이 외부의 정보나 생각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21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을 만든 것이 이를 반증한다. 역사 속에서도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은 상업 권력이 형성되면서 이뤄졌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어서 그런 흐름의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 붕괴론은 예전부터 많았다. 1990년대 김일성이 죽고 공산권 국가들이 체제가 바뀔 때 북한 체제 붕괴론이 나왔지만 북한은 그 시기를 잘 넘겼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다. 체제 붕괴나 변화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급변 사태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붕괴론에 기대 북한을 대한다든지 정책을 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대북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펴가는 게 바람직한가.
△장기적으로 남북 관계는 당연히 개선돼야 하고 그것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핵·미사일과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우선 안보 차원에서 힘을 키워 북한의 위협을 막아내면서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평화와 안보를 이분법적으로 갈라치고 서로 비판할 게 아니라 같이 아우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굉장히 어렵지만 북한의 변화를 조금 더 재촉해 대화도 하고 경제 협력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체제 붕괴보다 리더십 교체 등 점진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중국은 대만 침공을 겁박하고 미국은 이를 저지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으면서 동북아시아 안보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중국의 힘이 커지면서 미중 패권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입지가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 한미 동맹을 당연히 잘 유지·관리해야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잘 가져가야 한다. 오래된 외교적 과제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북한도 경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가 완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이 그동안 견지해온 세계 비핵화 전략을 흔들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을 홀대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완전히 간과하기도 어렵다.
-차기 정부는 대북 정책, 외교안보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야 하는가.
△지금은 냉각기를 갖고 대화를 준비해야 할 때다. 북한을 어떻게 설득하고 우리의 안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미국과 어떻게 조율할지 대비해야 한다. 대미 관세 협상을 앞두고 방위비 인상 요구에 대응해 반대급부로 받아낼 것 등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영국·일본 사례 등을 검토해 국익 훼손 최소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미 동맹의 큰 틀을 잘 유지해야 한다.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계기로 한중 관계를 복원시키는 방안도 잘 조율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북한과 맞물려 있는데다 국제사회 제재도 있으므로 너무 틀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민간 차원에서 서서히 풀어가야 한다.
-최근에 ‘업코리아(UP! KOREA)’라는 책을 내셨는데.
△경제사회연구원의 몇몇 학자들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할지 얘기하다가 이 책을 함께 만들게 됐다. 정치·경제·사회·외교 분야별 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전 정신, 자부심, 자율성, 안심, 신뢰의 5가지를 업(up)시키자는 방향으로 정리했다.
◆He is…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박근혜 정부 시절 통일비서관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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