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 채무자가 비대면 전산 자동심사 방식으로 대출받은 것은 사기죄가 아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람을 대상으로 속인 게 아니라는 취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사기죄로 기소된 60대 박모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에 돌려보냈다.
박씨는 카드사 앱을 통해 2차례 대출받은 345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대출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다른 빚을 돌려막고자 카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박씨의 채무는 이미 3억 원에 달했고 대출 원리금도 월수입을 초과한 상태였다. 이에 검찰은 박씨를 사기죄 혐의로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박씨의 범행 의도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특히 박씨가 대출금 상환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출을 신청한 행위는 사기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형법상 사기죄 성립 요건인 기망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며 "사람에 대한 기망 행위가 없다면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박씨가 카드사 앱에 입력한 자금 용도, 보유 자산, 연소득 등을 토대로 대출이 전산상 자동 처리됐고 대출금이 송금됐다”며 “그 과정에서 직원이 대출 신청을 확인하거나 송금하는 등의 개입을 했다고 인정할 사정이 보이지 않으므로 박씨가 사람을 기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은 사기죄에서 기망 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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