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천연가스 개발에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국내 에너지 업계가 액화천연가스(LNG) 인프라 투자에 조(兆) 단위 투자를 쏟고 있다. LNG는 관세 부과를 통해 글로벌 통상 환경을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우리나라의 주요 협상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탈탄소의 중간 단계 연료로 LNG 수요가 확대되는 만큼 업체들의 밸류체인 구축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현재 증설 중인 광양 LNG 터미널 외 추가 터미널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9300억 원을 투입해 LNG 탱크 7·8호기를 구축 중인 광양 2터미널은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LNG 터미널 구축에 내년까지 누적 1조 9900억 원, 2030년까지 3조 2500억 원 규모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어 광양이 아닌 지역에도 터미널을 구축해 미국의 천연가스 인프라 개발 및 수출 수혜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드스트림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LNG 전 밸류체인을 구축하기 위한 가스전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미얀마 가스전 4단계 개발(4곳 추가 시추)을 위해 9260억 원을 투자했다. 3년 전 4억 4000만 호주달러(약 4000억 원)을 들여 인수한 육상 가스전 세넥스에너지의 경우 내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을 기존의 3배가량 확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향후 LNG 수요가 큰 폭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생산에서 판매까지 전 과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SK그룹 역시 LNG 벨류체인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가스(018670)가 1조 4000억 원을 투입한 울산 LNG 복합발전소(GPS)는 지난해 말부터 본격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 인근에 구축된 LNG 터미널과 시너지를 통해 사업 외연을 기존 액화석유가스(LPG)에서 LNG로의 확장 및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룹사인 SK이노베이션(096770)은 현재 울산에 자가발전 설비를 구축하고 LNG를 직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가 1조 6000억 원 규모 지분 투자한 호주 바로사 가스전의 경우 올해 하반기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에 가스전 물량 도입이 시작되면 원가 경쟁력이 개선될 것으로 SK이노베이션은 기대하고 있다.
한화의 에너지 계열사인 한화에너지는 최근 차세대 LNG 발전소 구축을 위해 한화솔루션(009830)으로부터 전남 여수 토지를 매입하기로 했다. LNG 발전소를 완공한 후에는 기존 석탄 열병합발전소를 순차적으로 폐쇄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에너지는 LNG 발전소 구축을 위한 투자 규모를 본격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너지가 앞서 5140억 원 규모를 투자한 통영 LNG 복합발전소는 지난해부터 상업 운전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또 한화에너지는 자회사 한화임팩트를 통해 미국 LNG 개발업체 넥스트디케이드에 800억 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와 한화오션(042660) 등 역시 넥스트디케이드에 대한 지분 투자에 나서면서 한화그룹은 총 15% 이상의 지분을 확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LNG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이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LNG 세일즈’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과의 첫 협상 테이블에도 방위비 인상 등과 함께 LNG 수입 확대를 올려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업계의 LNG 수입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중동산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미국산 LNG 수입이 본격화될 경우 수입선 다변화에 따라 국내 업계의 가격 협상력이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인공지능(AI)용 데이터센터 구축에 따른 전력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LNG 밸류체인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그룹들이 앞다퉈 LNG 밸류체인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산 LNG를 수입해 저장·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넓어지는 상황”이라며 “ 민관이 함께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LNG 사업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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