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기존 3조 6000억 원이던 유상증자 규모를 2조 3000억 원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줄어든 1조 3000억 원은 한화에너지 등 3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할인이 없는 제3자 유상증자를 추진해 소액주주가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구조를 만들었다. 자금 조달 목표액은 유지하되 구조를 바꿔 시장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신성장 동력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에어로는 11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한화에어로는 8일 이사회를 열고 기존에 발표한 주주배정 유상증자 규모를 3조 6000억 원에서 2조 3000억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정정 공시했다. 신주 발행 가격은 기존 60만 5000원에서 53만 9000원으로 15% 할인하기로 했고 청약 예정일은 6월 4일에서 6월 5일로 미뤘다. 일반 유상증자 규모 축소로 줄어든 1조 3000억 원에 대해서는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한화에너지싱가포르 등 3개 기업이 할인율 적용 없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해 자금 조달 목표액은 그대로 유지했다.
한화에어로는 이번 정정 공시에서 한화 대주주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소액주주는 이득을 보는 구조를 짰다. 1조 3000억 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15%의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을 방침인데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 등 한화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어 신주 매입가가 높아지면 대주주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 또 이대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진행되면 앞서 한화에어로가 한화에너지 등에 한화오션 주식 매입 대금으로 지급한 1조 3000억 원이 한화에어로에 되돌아가 신사업 투자 여력이 높아진다. 주주 친화적인 발표안에 이날 한화에어로 주가는 8.72% 뛰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 대표는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할 소액주주들의 부담을 완화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 희석 부작용을 감소시키면서 필요한 자금 3조 6000억 원을 모두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재규 한화에너지 대표는 “불필요한 승계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한화에어로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병철 한화에어로 전략 총괄 사장은 이날 서울 장교동 본사에서 ‘미래 비전 설명회’를 열고 총 11조 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설명했다. 앞으로 4년 동안 △매출 증대를 위한 해외 투자(6조 2700억 원) △신규 시장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1조 5600억 원) △지상 방산 인프라 투자(2조 2900억 원) △항공우주 산업 인프라 투자(9500억 원)에 나서는 것이 목표다. 증자로 마련하는 3조 6000억 원 외 7조 5000억 원은 회사채 발행 및 금융권 차입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던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앞서 지적됐던 사항 및 의혹(불분명한 자금 사용 목적과 지배구조 및 승계 문제)들이 잘 설명이 됐는지는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에어로는 폴란드 국영 방산 기업 ‘후타스탈로바볼라(HSW)’와 폴란드 자주포인 크라프(KRAB) 차체에 들어가는 4026억 원 규모의 구성품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는 폴란드와의 협력 관계 강화를 기반으로 기존 공급 제품에 대한 유지·보수·정비(MRO)를 비롯해 폴란드 ‘중장갑 보병전투차량’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폴란드가 해군 현대화를 위해 추진하는 8조 원대 잠수함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를 한화오션과 공동으로 수주하는 것도 목표다.
안 사장은 이날 공시에 대해 “유상증자 발표 이후 주주·언론·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따가운 질책과 염려의 말씀이 있었고, 아무리 경영적으로 옳은 방향이더라도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유상증자 규모 축소와 제3자 배정 증자를 결정했다”며 “1조 3000억 원을 되돌리는 방법도 대주주들은 일반주주들이 받는 15%의 할인 없이 가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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