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전쟁 및 경기 침체 우려에 국내 증시를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방불케 하는 대폭락장에 직면하자 금융 당국이 10조 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 가동 여부 및 시점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7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성 공급 등 필요한 조치가 언제든 취해질 수 있도록 100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 준비와 집행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통상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언급한 100조 원 규모 시장 안정 프로그램은 4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건설 관련 약 60조 원을 합친 것으로 증안펀드는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증안펀드는 일단 다 마련돼 있는 상황이 아니냐”면서 “(가동 여부는) 조금 더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금융 당국이 ‘증시 방어’를 위한 카드로 낼 수 있는 증안펀드는 2020년 3월 코로나19 시기 10조 7600억 원 규모로 조성돼 형태가 유지되고 있는 펀드다. 국책은행 및 금융회사 23개사가 10조 원,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등 유관기관 4곳이 7600억 원을 출자했다. 펀드운용은 ‘캐피털콜’ 방식으로 투자 목표 금액을 사전에 약정한 후 필요시 일부 투자 금액을 투자 자금의 수요에 맞춰 분할해 투입하는 형식이다. 코스피200 상장지수펀드(ETF)를 비롯한 대표적인 지수 상품을 매입해 시장 안정화에 활용할 수 있다.
당시 증시가 급반등하면서 실제 증안펀드 투입까지 이어지진 않았고 2022년 9월 증시 급락 상황에서 재가동이 논의됐으나 이때도 구두개입에 그쳤다. 증안펀드 조성 소식만으로도 투자심리 회복에 도움을 준 덕분이다. 금융 당국이 증안펀드를 가장 최근에 거론했던 것은 12·3 비상계엄 때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0조 원 규모의 증안펀드 등 시장 안정 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으나 이때도 실제 투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금융 당국이 증안펀드 재가동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증시 침체가 얼마나 장기화할지 아직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증안펀드는 증시 안정을 위해 정부가 투입할 수 있는 사실상 최후의 수단이자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기에 이를 조기에 소모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증안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5150억 원 규모) 이후 17년 동안 투입된 적이 없다.
미국발 증시 침체가 길어져 정부가 증안펀드 가동을 결심할 경우 증안펀드 조성 및 투입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코스피 시가총액 1907조 원 대비 현재의 증안펀드 규모가 0.6%에 불과한 수준이라 구두개입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펀드 규모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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