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종가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이후 최고치를(원화 약세) 기록한 것은 국내 주식시장 공매도 재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 관세 영향에 따라 투자자들 사이에서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 경기 침체 우려 속에 글로벌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섰지만 공매도가 우리 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트럼프 관세 우려 속에 4.1원 오른 1470.6원에 출발했다. 이후 장중 한때 1468.40원까지 저점을 낮췄지만 오후 들어 원화는 다시 약세를 띠면서 1470원 선을 내주면서 장중 최고가인 1472.9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약 16년 만에 최고치다. 계엄 및 탄핵 정국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한창 치솟던 지난해 12월 30일 종가 (1472.5원)보다도 높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는 1월 13일(1474.3원) 이래 두 달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 상승은 4월 2일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 부과 발표를 앞두고 시장 경계심이 커진 상황에서 공매도 전면 재개라는 겹악재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코스피지수가 장중 전 거래일 대비 3% 이상 하락하며 2500 선이 무너지며 외국인의 매도세가 거세진 것이 환율 상승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위재현 NH선물 연구원은 “탄핵 심판 관련 국내 정국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급증으로 인한 수급 부담이 겹쳐 환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며 “글로벌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엔화·위안화가 동반 강세를 띤 점을 고려하면 원·달러 환율도 하락 흐름을 보였어야 했는데 공매도가 변수로 작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최근 외환 시장은 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과 상호 관세 부과 조치 우려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환율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인 재료는 공매도보다 미 행정부의 상호 관세 세부 내용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공매도만 놓고 보면 외국인의 단기 트레이딩 자급 유입 등으로 인한 원화 가치 반등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위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등 불안정한 환경이 지속되는 이상 달러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원·달러 환율은 상단이 열린 구조”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터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외환 당국이 지난해 4분기 원·달러 환율이 한창 급등할 당시 시장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서 약 38억 달러를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이날 공개한 ‘시장안정조치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에 한은과 기획재정부가 매수한 달러보다 매도한 달러가 37억 5500만 달러 많았다. 원·달러 환율을 낮추기 위해(원화 가치 상승) 달러를 시장에서 더 내다 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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