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국내뿐 아니라 비영어권 글로벌 시청 시간 1위에 올랐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영화 ‘계시록’까지 한국인에게 지금 필요한 작품이 글로벌 시청자들의 선택도 받은 것이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고 살인을 저지르는 목사와 죽은 동생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여형사 등 각자의 믿음과 신념이 광기로 치달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계시록’은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아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에 대한 관용이나 이해는 없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지연되면서 벌어지는 현상도 비슷하다. 하루에도 수십 개가 도는 ‘받은 글’은 합리적 추론 같지만 작성자의 욕망이 드러난다. 전원 일치 판결을 위해 재판관 두 명을 설득하고 있다는 설을 비롯해 기각 한 명에 각하 두 명으로 탄핵은 기각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러한 ‘받은 글’ 대로라면 이미 인용이든 기각이든 결과는 나와 있다. 선고를 늦추는 이유로 정치적 고려를 비롯해 두 명의 재판관 퇴임, 마은혁 재판관 임명 등이 거론되고 심지어 두 명의 재판관이 선고 없이 퇴임한 후 벌어질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재판관 두 명이 퇴임한 뒤에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거부할 경우 탄핵 선고 자체가 무효화되면서 한 권한대행 체제로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헌재의 고심이 깊어질수록 이러한 글들을 비롯해 시나리오는 또 다른 해석을 낳고 또 다른 믿음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지속할 뿐이다. 헌재는 그동안 호주제와 동성동본 결혼 금지 등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민들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왔듯 이번에도 공공선을 위해 그렇게 하면 된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 대통령에 대한 찬반 시위가 매주 벌어지고 있다. 극단적인 분열은 국민 모두에게 피로감을 넘어 민주주의와 법치의 붕괴라는 회의감마저 들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폭싹 속았수다’는 우리를 위로한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살면 살아진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우리 모두의 모습을 그렸다. 6·25 전쟁 때 제주도로 피난을 온 애순이 엄마, 1987년 체제, 88올림픽, IMF 구제 금융, ‘떴다방’ 등 역사적 장면에서 애순과 관식 가족은 그저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울고 웃는다. 여전히 수많은 애순·관식 가족이 살아가며 만든 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폭싹 속고 있는’ 국민들에게 다시 일상을 돌려줘야 한다. 드라마로 위로 받고 있지만 진짜 위로는 헌재를 비롯해 정치인의 몫이다. 헌재가 국민을 위한 선고를 하고 탄핵 선고 이후 정치인들이 공공선의 정치 행보를 보인다면 국민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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