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연방 정부 축소와 함께 미군의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당장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전투사령부 통합을 비롯해주일 미군 확장 계획 중단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부담 증액 요구를 받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고사령관 지위도 미군이 내려놓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미 CNN 방송과 NBC 방송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의 국방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미군은 지역별로 전투사령부를 두고 전 세계를 6개 권역으로 나눠 지휘·통제 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우선 유럽 사령부와 아프리카 사령부를 독일 슈투트가르트 단일 사령부로 통합하고, 미국 북부 및 남부 사령부도 단일 사령부로 묶는다.
2007년 창설된 아프리카 사령부는 자체 지휘권이 필요할 만큼 이슈가 많은 지역이란 판단하에 특별히 신경써 왔지만 이번에 통합 대상이다. 북부 사령부는 국토방위와 캐나다, 멕시코와의 협력에 중점을 두고, 남부 사령부는 중남미와 카리브해 및 인근 해역에 초점을 둬 서로 역할에 차이가 있어 별개 조직으로 운영돼 왔지만 통합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아시아 담당 인도·태평양 사령부와 중동 담당 중부 사령부는 이번 통합 대상에 거론되지 않았다. 중부를 담당하는 중부사령부도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보고서는 사령부 통합으로 국방부가 5년 간 3억 3000만 달러(약 4855억 원)의 국방빌를 절감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각 사령부 통합이 통제 및 작전 범위가 확대돼 다양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지휘부 폐쇄에 따른 정치적 위험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주일 미군 확장 계획을 중단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는 일환으로 주일미군 개편 및 현대화를 추진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계획 중단을 추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계획 중단으로 약 11억 달러(1조 618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정치적 위험을 초래하고 태평양 지역에서 지휘 통제 범위를 줄일 수 밖에 없다고 보고서는 꼬집었다.
또 합동참모부에서 합동훈련 및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의 대폭적인 감원 및 미군 전략사령부 산하 합동정보전작전센터(JIOWC)를 없애는 방안까지 포함해 감축 가능한 예산은 5년 간 10억 달러(1조 4710억 원)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민간인력의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춰온 국방부가 미군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나토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SACEUR)을 맡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NBC는 두 명의 국방부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75년 간 나토 최고사령관은 미국 4성 장군이 겸임해왔다. 나도 최고사령관은 유럽 사령부의 수장이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감독해왔다.
다만 주한미군은 예산 절감 대상에 포함되는지는 아직은 불분명해 CNN은 주한미군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군의 연간 예산은 8000억 달러(1176조 8000억 원) 이상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월 군에 향후 5년 간 국경 보안을 제외한 분야에서 대폭적인 예산 삭감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한미군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 국방부가 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장군 규모 감축이 현실화하면 주한미군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미 8군사령부 등 미군 장군이 담당하는 주한미군 관련 조직도 축소될 수 밖에 없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군 내 장군 계급이 비대해지면서 낭비적 지출이 늘어나고 의사 결정 과정을 관료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한미군 축소 또는 역할 조정에 대한 조짐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부대 운용 방식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주한 미 7공군은 2024년 7월부터 군산기지(8전투비행단)에 있는 F-16 9대를 오산기지(36전투비행단)로 1년 동안 임시 재배치했다. 이에 오산기지에 배치된 주한미군 F-16은 31대로 늘어났다. 7공군은 1년간 F-16 31대를 보유하는 36전투비행단을 ‘슈퍼 비행대대’라고 명명했다.
만약 이 같은 방식이 정착된다면 한반도 유사시 별도의 공군 부대를 파견하지 않고, 기존 주한 미 공군 대대에 일부 전력을 추가하거나 이동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올해 주한미군에서 퇴역하는 A-10 공격기를 대체할 미 공군 전투비행대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대신 일부 전투기만 기존 주한 미 공군에 일시 배속시키거나 순환배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이유다.
문제는 미군이 인력 및 조직 감축 추진으로, 첨단 무기 운용이 승패를 좌우하는 현대전에서 관련 지원 인력과 시설 및 조직을 과도하게 축소하면 대북 감시정찰 및 전투력 급감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어 우리 군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안보도 거래로 보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치 신념에서 비롯한 국제질서의 폭풍이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손해 보는 대표적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며 “한국을 군사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역시 안보의 핵심인 주한미군 감축 등을 ‘카드’로 압박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릎을 꿇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비롯해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에 거액의 ‘청구서’를 내밀 여지가 커진 셈이다.
한국과 미국은 2026년부터 5년간 적용할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미국 대선 직전이던 2024년 10월 타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때도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등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 비용을 상세하게 계산해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그 비용을 한국에서 반드시 받아내려고 더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 핵위협에 대응하려고 2023년 ‘워싱턴 선언’에 기초해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앞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한미 핵협의그룹의 핵심은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무기를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북핵에 대응하는 한미 훈련을 강화해 실시하는 것인데, 이를 지속하려면 한국 정부가 거액의 청구서를 감당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하거나, 대중국 견제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바꾸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전략가들은 중국을 미국 패권에 대한 핵심 위협으로 보고 있다. 중국을 최대한 억제하려면 주한미군이 북한 방어에만 전념하기 보다는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중국 견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가 많은 것도 이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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