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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같던 사춘기 시절, 유화가 되다

■에미 쿠라야 개인전 '해피 버니'

사실적 배경·만화풍 인물 통해

짜증·불안·설렘 소녀 감정 묘사

애니메이터 지망생서 유망작가로

"내 삶이 그림과 이어져 있기를"

에미 쿠라야, 블랙 리본(2015) /사진제공=페로탕@2025 Emi Kuraya/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회색빛 현실적인 도시 풍경 속에서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가냘픈 소녀가 모호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섬세한 붓질로 완성한 유화의 정교함과 만화적 감수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화풍은 1995년생 일본 작가 에미 쿠라야의 시그니처다. 애니메이터 지망생이었던 작가는 어린 시절 접했던 만화적 기법을 활용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감각을 전달한다. 작가가 그리는 소녀들은 교복 차림으로 공원을 지나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때로는 한적한 주택가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다.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은 비록 만화풍으로 가공된 현실이지만 현실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행동과 표정이 캔버스 속 소녀들의 모습과 겹치며 우리가 한때 품었던 감정의 흔적을 따라가게끔 이끈다.

쿠라야의 한국 두 번째 개인전 ‘해피 버니’가 서울 청담동 페로탕에서 열리고 있다. 쿠라야는 최근 만화라는 장르를 재조명하고 있는 미술계에서 단연 주목받고 있는 신진 작가다. 도쿄 타마미술대학 재학 중 데뷔해 갓 서른을 맞이한 작가는 일본은 물론 서울, 상하이, 파리, 홍콩 등 해외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스위스와 홍콩 아트바젤, 프리즈 뉴욕과 서울 등에도 작품을 내걸었다. 작가로 데뷔한 계기에 대해 “나만의 표현이 무언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활동하던 중 무라카미 다카시 씨가 저를 찾아주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작가는 2018년부터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가 이끄는 아트 그룹 ‘카이카이키키’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두 번째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에미 쿠라야가 자신의 작품 ‘잠자리와 원형 연못(Dragonflies and a Circular Pond)’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미기자


그러나 쿠라야의 스타일은 그룹 작가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진다. 다카시 등 선배 세대들이 주도하는 ‘슈퍼플랫(Superflat)’ 스타일이 대담한 윤곽선과 밝은 색채로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 대한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작가는 만화적 내러티브의 내적 구조를 회화로 재현하면서 차별화를 꾀한다. 검은 리본이 눈에 띄는 소녀의 옷차림이나 신발, 방울이 달린 팔찌, 애착하는 인형, 갈색 머리 등은 소녀의 감정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을 묘사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택되는 요소들이다. 특히 큰 눈동자가 향하는 시선의 행방은 소녀의 감정을 탐구하는 힌트이기에 작가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에미 쿠라야, 시티라이트(2025) /사진제공=페로탕 @2025 Emi Kuraya/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Courtesy Perrotin




인물과 달리 배경 묘사가 유난히 사실적인 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다. 도쿄 이케부쿠로 거리나 가나가와 연못 등 실제 일본의 10대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소녀들이 서있는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치밀하게 그려진 배경에 대해 “내 삶이 그림과 이어져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림 속 소녀와 나는 외모도 상황도 다르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낀다”며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 걸린 ‘짜증 난 소녀’와 원작인 드로잉 ‘무제’는 실제 내가 짜증이 날 때 낙서로 그렸던 것이다. 좌절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 특히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한때 애니메이터를 동경하며 전문학교 체험 입학까지 감행했던 작가이지만 ‘파인아트’의 세계로 넘어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한다. 작가는 “애니메이션 전문학교의 분위기는 하루의 체험만으로도 짐작됐는데 미술대학의 커리큘럼은 오히려 잘 모르거나 이상한 점이 많아 흥미를 크게 느꼈다”며 “실제 미술을 배워보니 아무리 배워도 다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깊이에 평생 질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캔버스 안에서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면서도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표현이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4월 19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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