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연준의 고위관계자들은 한동안 경제 상황을 지켜보고 금리 기조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제 충격이 아직 지표 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물가 상승이나 소비 감소 등 경제 타격의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전망에서다.
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은 13일(현지 시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관세 인상이 지속된다면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둔화) 추세가 중단되고 적어도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물가 상승과 고용 둔화라는) 양 측의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금 연준의 통화 정책 기조는 잠재적인 경제 상황 변화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른 시일 내 금리 변동 가능성을 낮게 봤다.
제퍼슨 부의장은 전날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2.3% 상승해 4년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인 데 대해 “아직 2%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지금 금리는 적당히 제한적인 수준”이라며 인하 필요성에 선을 그었다.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는 금리가 중립 금리보다 높은(=제한적인)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지금이 그런 수준이란 의미다. 중립금리는 경제를 부양하지도 억누르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말한다.
제퍼슨 부의장은 미국 경제가 침체를 피할 것으로 봤다. 그는 경제 전망에 대해 “올해 경제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미국 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물론 무역 정책이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경제적 영향은 알 수 없고 앞으로의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도 이른 시일 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봤다. 그는 NPR이 13일(현지 시간) 공개한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 이렇게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기업이나 중앙은행이 장기적인 사안에 대해 곧장 결론을 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그건 정말로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굴스비 총재는 지난달 이후 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공기 중에 먼지가 많이 낀 상황”이라며 관세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그는 관세의 여파로 기업과 소비자들이 지출이나 투자계획을 미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미국 경제)는 경제 지표를 두고 여전히 일종의 숨을 참고 있는 상황에 있다”며 “(지난달 과 같은 상황에서는) 일종의 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 그런 일이 수치에 반영되기 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굴스비 총재는 다만 경제에 대한 비관론은 경계했다. 그는 “경제 상황에 잡음이 많이 있지만 이를 지나치고 나면 그 아래에는 여전히 견고한 경제가 놓여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굴스비 총재는 “연준의 임무는 증시나 정책 발표의 일간 변동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적인 정책 흐름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최소한 상황이 괜찮다는 점을 시사하는 지표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4월 CPI 발표 이후 “인플레이션은 없고, 휘발유·에너지·식료품 그리고 사실상 다른 모든 것의 가격이 내려갔다”며 “연준은 유럽과 중국이 한 것처럼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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