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6000억 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주주 반발을 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경영진의 48억 원 규모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에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1조 원이 넘는 단위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상쇄하기에 자사주 매입은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추후 주가 향방은 회사의 비전과 성장세에 달려 있을 전망이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날 65만 4000원에 거래를 마감해 전 거래일 대비 3.1% 내렸다. 24일만 해도 저가 매수세 유입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손재일 사업부문 대표, 안병철 전략부문 사장 등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 소식에 4.6% 반등했지만 이날 상승분 일부를 반납했다. 이달 19일 종가 기준으로 75만 6000원이었던 주가는 20일 회사 측의 대규모 유상증자 발표 이후 21일 62만 8000원까지 하락하고나서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3조 6000억 원 규모의 기습적인 유상증자 발표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기업 거버넌스 전문 기관은 25일 논평을 내놓고 4년 동안 3조∼4조원의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면 유상증자는 불필요한 것 아닌지, 1조 3000억원 규모의 한화오션 지분 인수 승인 한 달 만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따른 일반주주 피해를 고려했는지 등을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은 "한화오션 지분 인수 거래와 금번 유상증자는 각각 별개의 경영·사업상 필요성에 근거하여 진행되는 독립적인 거래”라고 선을 그었다.
회사 측은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유상증자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지난주 발표한 유상증자 계획에 대해 주주 여러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혜량해달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이번 유상증자가 대규모 투자를 단기간 내에 마련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채 발행 등 차입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이 있지만 이는 회사 부채비율을 급격히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 한화 측 논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은 해외방산에 1조 6000억 원, 국내방산에 9000억 원, 해외조선에 8000억 원, 무인기용 엔진에 3000억 원을 각각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주총 직후 기자들을 만나서 주총장에서 나온 질의응답을 묻는 말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해 드렸다"고 말했다.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주당순이익(EPS)과 주당배당금(DPS)이 감소해 보통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떨어진다. 다만 보잉의 경우 243억 달러(약 35조 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하면서도 발행 당일 주가 하락이 3%에 그치고 이후 주가가 20% 이상 상승한 사례가 있어 단정은 어렵다. 보잉은 자금 부족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과 대규모 자본조달의 필요성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사전 설명한 결과 오히려 기업가치가 상승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미 유상증자를 결정한 이상 추후 관건은 회사의 비전과 성장성을 설득하는 일에 달려 있을 것”이라며 “조달 자금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아낸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주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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