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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한종희 영정 앞에서…삼성인은 허공만 봤다 [biz-플러스]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경기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6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슬프다."

25일 오후 6시 경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 조문을 끝낸 김용관 삼성전자 사장은 한 부회장에게 애도의 뜻을 전할 수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장례식장 밖으로 나온 그에게 기자는 "한 부회장과 어떤 관계였느냐"고 물었다. 김 사장은 "의료기기사업부장일 때 '보스'셨죠"라고 말했다. 2020년부터 4년 동안 한 부회장 가까이서 일했던 때였다.

"한 부회장은 어떤 보스였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김 사장은 "자꾸 말 시키지 마라, 눈물 난다"며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 사장은 태양이 지고 있는 하늘을 한참 바라봤다. 10초 이상의 침묵이 이어졌다. 무거운 고요가 기자의 어깨를 짓눌렀다.

취재진은 질문을 멈췄다. 촉촉해진 그의 눈과 적막이 모든 대답을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평소 냉철한 이미지로 알려졌던 삼성 경영진은 이날 빈소에서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취재진에게 현 상황을 알리던 어느 삼성 관계자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한 부회장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던 전 삼성전자 사장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몇 시간 째 빈소를 지키기도 했다.

최시영 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삼성 구성원과 업계 동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불과 지난주까지 한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주총회 주재와 중국 출장 등으로 활발하게 경영 활동을 했기에 별세 소식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로 느껴졌다.

최지성 전 부회장, 신종균 전 고문, 윤부근 전 고문, 이상훈 전 사장, 최치훈 전 사장 등 과거 회사를 이끌었던 삼성맨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최치훈 삼성물산 전 사장은 한 부회장에 대해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고 존경한다"며 "나에게 굉장히 따뜻했다. 한 부회장 덕분에 외국에서 온 내가 (삼성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삼성전자는 이날 사내 게시판에 "지난 37년간 회사에 헌신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고인은 TV 사업 글로벌 1등을 이끌었으며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세트 부문장과 DA사업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왔다"고 추모했다.

현재 중국 출장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현지 일정으로 직접 조문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유가족들에게 멀리서나마 깊은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 따르면 한 부회장은 휴식 중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별세했다. 1962년생인 한 부회장은 TV 개발 전문가로, 삼성전자 TV 사업의 19년 연속 세계 1위 기록을 이끈 주역이다.

천안고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입사해 LCD TV 랩장, 개발그룹장, 상품개발팀장 등을 거쳐 2017년부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을 맡았다. 2021년 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 세트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을 맡으며 TV 뿐 아니라 생활가전, 스마트폰 등 다양한 제품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이끈 삼성의 리더였다.

한 부회장의 별세로 당분간 삼성전자에서 경영 리더십 공백은 불가피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부회장이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일정은 지난 19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였다.

주총에서는 삼성전자의 부진한 주가와 실적에 대한 주주들의 질의와 의견이 이어졌고, 이에 한 부회장은 거듭 낮은 자세로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최근 주가가 주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올해 반드시 근원적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견조한 실적을 달성해 주가를 회복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과와 다짐은 37년간 '삼성맨'으로서 회사에 헌신해온 한 부회장의 생전 마지막 육성 메시지로 남았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편 외부 인사들의 애도 행렬도 이어졌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도 조문했다. 이찬희 위원장은 추모를 한 뒤 장례식장을 빠져 나가며 취재진에 "정말 슬픈 일"이라고 짧게 말했다.

한 부회장과 업계 동료인 조주완 LG전자(066570) CEO도 빈소를 찾아 "전자 산업에 오랫동안 기여를 해주신 분인데 참 훌륭하신 분이 너무 일찍 가신 것 같다"며 "삼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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