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장을 추진하는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약 5000억 원의 가치로 기업공개(IPO)에 나선 배경에는 롯데그룹 차원의 강력한 상장 완주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재무적투자자(FI)와의 계약에 따라 올 상반기 내 상장을 마쳐야 하는데 가치 평가를 공격적으로 할 경우 증권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FI와의 풋옵션 계약에 따라 공모가가 낮아질수록 차액 보전을 많이 해줘야 하는 만큼 할인율은 최소화했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기업가치 산정에서 비교적 낮은 ‘EV/EBITDA’ 배수를 가진 국내 기업만을 비교군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몸값을 낮추고 변수를 최소화했다. EV/EBITDA는 기업가치(EV)를 상각전영업이익(EBITDA)으로 나눈 값으로 물류·택배업과 같이 대형 시설 운영에 따른 감가상각비가 대규모로 발생하는 산업에서 주로 활용하는 가치 산정 방법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가치 산정을 위해 비교군으로 삼은 CJ대한통운과 한진의 EV/EBITDA 배수는 각각 4.67배와 8.13배로 이들의 평균값은 6.40배다.
이보다 높은 EV/EBITDA 배수를 가진 미국 UPS 등 해외 기업은 비교군에서 아예 제외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전세계 해외 물류·택배 기업의 EV/EBITDA 배수 평균은 8.8배이고 UPS(10.1배), DSV(19.8배) 등은 이보다 높은 배수를 가지고 있다. 비교 대상 선정에 따라서는 보다 높은 배수를 가지고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2021년 상장 당시 4개의 해외 기업만을 비교대상으로 삼은 카카오뱅크 등 사례가 다수 있어 내수 기업이어도 비교군으로 해외 기업을 선정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롯데그룹은 해외 기업을 비교군으로 선정했을 때 심사 당국에서 제동을 걸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장 추진 기업이 증권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하면 금융감독원이 이를 심사해 정정 요구를 할 수 있는데, 해외 기업을 다수 비교군에 포함시켰을 때는 국내외 시장 간 차이를 근거로 정정 요구가 있을 수 있고 이에 따른 일정 지연 가능성이 커진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그룹 차원의 강력한 상장 완주 의지가 있었다”며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UPS 등을 비교군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롯데 측이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공모가를 무작정 낮추려 한 것은 아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비교 기업의 EV/EBITDA 배수 평균값인 6.40배에 자체 EV와 EBITDA를 대입해 주당 평가가액을 산출한 후 이를 15.55~24.65% 할인했는데, 이는 최근 약 2년 동안의 코스피 상장사 할인율 평균인 17.7~30.5%와 비교해 낮다. 비교군 선정은 심사 당국의 정정 요구 가능성을 감안해 보수적으로 하되 할인은 적게 해 가능한 제값을 받으려 한 시도로 보인다. 롯데 주요 계열사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공모가가 낮아질수록 FI에게 더 높은 금액을 보전을 해줘야 하는 계약에 묶여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CJ대한통운에 이은 국내 2위 물류·택배 사업자다. 지난해 연결 기준 3조 5733억 원의 매출과 902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희망 공모가 밴드는 1만 1500~1만 3500원이며 이에 따른 예상 시가총액은 4789억~5622억 원이다. 4월 24~30일 기관 대상 수요예측, 5월 12~13일 일반 청약을 거쳐 5월 21일 코스피 시장에 입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장대표주관사는 삼성증권(016360)과 한국투자증권이고 공동 주관사는 KB증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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