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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출은 종합예술”…KEDO 덕에 바라카서 쾌거

[다시, KOREA 미러클]

<1부> 한국기업, 1위의 순간 ⑦ 한전

◆ 변준연 前 부사장이 밝힌 '진심 세일즈'

"엘리베이터 황금색으로…왕세제 겨냥 마케팅도

원전만 파는게 아냐…팀코리아 패키지딜이 핵심"

중도철수했지만…“KEDO 경험 바라카서 꽃피워”

변준연 전 한전 부사장이 7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맨체스터 시티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한 다음 날 아랍에미리트(UAE) 최대 일간지에 축하 광고를 실었죠. 고객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변준연 전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은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최종 사업자로 깜짝 선정된 것은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나라가 우승컵을 거며쥔 것과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첫 시도부터 성공하긴 어렵다”며 기대하지 않았는데 미국·프랑스·일본과 같은 쟁쟁한 원전 선진국을 제치고 계약을 따냈기 때문이다.

바라카 원전은 UAE 사막 한가운데 1.4GW 원자로 4기를 건설·운영하는 사업으로 규모가 200억 달러(약 29조 1000억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수주한 지 15년 이상 지났지만 여전히 단일 사업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플랜트라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변 전 부사장은 “바라카에서 한국은 세계 여섯 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고 UAE는 아랍 국가 최초 원자로 보유국이 됐다”며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의미 그대로 바라카는 한국과 UAE 양쪽 모두에게 축복이 됐다”고 말했다.

2009년 2월 5일 UAE 바라카 원전 입찰 설명회 만찬장에서 변준연(오른쪽) 전 한국전력공사 부사장과 알 하마디 UAE 원자력공사 사장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변준연 전 부사장


◇모두가 “안된다”…사무실 없이 수주전

지금은 신화가 됐지만 수주전이 진행되던 2009년만 해도 국내외 분위기는 ‘비관론’으로 요약됐다. 해외 원전 건설 경험 없는 공기업이 산업·물류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 원전을 지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변 전 부사장은 “당시 국회에서 국회의원 수십 명이 참여한 토론회가 열렸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안 될 거라고만 성토하더라”며 “여당 의원들조차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프랑스를 가장 유력한 수주 후보자로 점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UAE와 프랑스의 외교 관계가 긴밀했기 때문이다. 변 전 부사장은 “2009년 2월 입찰 설명회가 열렸을 당시 미·일·프 관계사 20여 곳이 모였다”며 “제가 한전 대표로 참석했는데 그 누구도 KEPCO(한전)가 뭐 하는 곳인지 관심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기대가 낮다 보니 협상단의 여건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변 전 부사장은 “현지 상주 사무실도 꾸리지 못했다”며 “경쟁사들은 협상이 열리는 7성 호텔에 상주하며 물밑 접촉을 하는데 우리는 왕복 1만 4000㎞를 오가는 데만 며칠씩 버려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2009년 한 해 동안 사실상 격주에 한 번씩 UAE를 방문했다”며 “당시만 해도 아부다비에서 한국으로 오는 노선이 새벽 3시에 하나밖에 없어 무박 사흘 출장이 되는 일도 허다했다”고 기억했다.

2014년 8월 30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호기가 건설되고 있다. 연합뉴스




◇엘리베이터 뜯어고친 고객 우선 세일즈

열악한 조건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객 감동 세일즈’였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었던 본사의 엘리베이터와 기도실이 대표 사례다. UAE 측의 방문이 잦던 2009년 당시 본사의 6개 주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황금색으로 바꿨다. UAE 사람들이 황금색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한 조치였다. 본사 회의실 중 하나를 기도실로 리모델링하기도 했다. 무슬림이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 배려다. 공사 당시 이슬람 율법에 맞춰 기도실과 세족실까지 완벽하게 구비해 UAE 사절단이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사업 수주 이후에도 고객 관리는 이어졌다. 한전은 2011~2012년 시즌 맨체스터 시티 FC가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우승하자 다음 날 바로 UAE 최대 일간지에 축하 광고를 내기도 했다. 구단 보유주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왕세제를 겨냥한 ‘감동’ 마케팅이었다. 변 전 부사장은 “계약이 끝났다고 고객관리에 소홀하면 안 된다”며 “계약 후에도 각고의 노력을 통해 UAE 측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전뿐 아니라 민간 협력사와 정부까지 총동원된 ‘원팀 전략’도 수주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한전 고위급 인사들은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는 물론 청와대와도 접촉하며 역량을 결집했다. 대통령이 친서를 전달하고 정부에서 경제·안보 협력을 약속한 덕에 최종 수주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한국식 원팀이 효과를 보자 바라카에서 고배를 마신 프랑스와 일본은 한전 모델을 벤치마킹해 각각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일본 국제원자력개발주식회사(JINED) 중심의 수직화된 수출 체계로 개편하기도 했다.

변 전 부사장은 원전 수출은 단순히 기술이나 설비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정치·문화·국방이 총망라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변 전 부사장은 “원전 세일즈에서 우리 원자로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는 것은 하수”라며 “상대 측은 이미 기술 분석은 끝낸 상태다. 중요한 것은 패키지 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한국과 UAE 관계는 각별해졌다. 아크부대가 파병되는가 하면 아부다비의 셰이크칼리파병원은 서울대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2009년 전략적 동반자가 된 이후 지난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한국이 맺는 외교 관계에서 동맹 바로 아래 단계다.

2002년 8월 7일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 대북경수로(KEDO) 사업 현장에서 원자로 건물을 건설하기 위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KEDO때 해봤다”…준비된 팀코리아

변 전 부사장은 바라카 원전이 엄밀한 의미에서는 한국의 최초 해외 원전 사업이 아니라고 귀뜸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된 대북경수로(KEDO) 사업에서 해외 건설 경험을 축적했다는 의미다. KEDO는 1994년 체결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추진된 기구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1GW급 가압경수로 2기를 북한에 지어준다는 내용이다. 공개입찰도 아니었고 한반도 내에서 진행된 사업이지만 발주처가 미국·일본·EU로 구성된 KEDO 집행위원회였던 데다 현장 근로 인력에 우즈베키스탄 인력도 파견돼 사실상 해외 건설 사업 성격을 띠었다.

변 전 부사장은 “KEDO 사업을 진행하며 원전 관련 국제 계약도 체결하고 시공·감리·조달 등 각종 업무에서 글로벌 표준 양식에 맞춰 작업 했다”며 “당시 KEDO 집행위 요구에 맞춰 업무한 경험을 십 년 넘게 쌓아둔 덕에 UAE 측의 세세한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변 전 부사장은 “바라카 원전 공사가 최고조였던 2016년에는 총 34개국에서 온 2만 2000여 명의 인력이 사막 한가운데서 함께 숙식하며 작업해야 했다”며 “KEDO 경험이 없었다면 그 엄청난 작업을 원활히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KEDO 사업이 중단된 것도 바라카 수주의 원동력이 됐다. KEDO 사업에 참여했던 한전과 협력사로서는 새로운 해외 사업이 없으면 당장 일감이 끊길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UAE에서 원전 신설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전 측이 삼성동 본사 지하에 민간 시공사 직원과 국내외 전문가까지 포함해 80명 규모의 워룸을 꾸린 이유다. 변 전 부사장은 “시간이 지난 뒤 UAE 측과 이야기해보니 수주에 임하는 태도부터 한국은 남달랐다고 하더라”며 “프랑스와 미국은 협상단을 다소 무례하게 대하고 일본은 과잉 의전만 하는 반면 한국 측에서는 열정과 절실함이 느껴졌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KEDO 사업 무산으로 한국이 회수 못한 투자금이 약 15억 달러”라며 “그 수업료를 낸 덕에 바라카에서 200억 달러 사업을 수주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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