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인 아서 조지 탠슬리는 생태계(ecosystem)로서 생물과 환경 간의 동태적 에너지 흐름과 물질의 순환 관계를 처음 파악했다. 그 후 ‘경쟁의 종말’의 저자인 제임스 무어가 기업과 산업계의 전략 설정에 탠슬리의 생태계 이론을 원용했다. 기업이나 산업 활동에서 서로 연결된 주체들이 경쟁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파악하고 이를 주요 전략으로 작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활동하는 일종의 플랫폼을 찾는 것인데 부가가치의 창출에는 원료·부품·인력·기술·판로 등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생태계의 구성 요소가 돼서 이들 관계를 동태적으로 발전시키는 게 요체라는 것이다. 협력 기업의 뛰어난 요소인 가공 기술 없이 완제품 회사가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플랫폼 산업의 기업 간 밀접한 연계는 말할 것도 없다. 공급망이나 가치사슬에 놓인 기업 활동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기업의 컨트롤타워는 불을 켜놓고 있지 않는가.
최근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이 당면한 문제를 보면 생태계의 중요성을 바로 알 수 있다. 정부 정책의 변경으로 주력 기업의 사업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많은 협력 업체들은 사업을 접었다. 업계 최고의 전문가는 전직하고, 수십 년간 노하우를 쌓은 직원들은 현장을 떠났다. 전문인력을 산출하는 대학 입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회복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고 직간접 비용은 추산을 불허할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몇 가지 활동으로 기업 생태계의 진화를 돕고 있다. 자유시장 체제를 동태적으로 가동하는 생태계의 진전을 위해서 부드러운 손작업을 한다. 대기업의 상생 활동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협력 업체와의 공정거래, 공동 기술 개발, 생산과 판로 분야의 협력, 인력 개발과 복지 증진 등 다양한 분야의 유기적 연결 고리를 주시한다. 현재 250여 개 대기업과 수만의 협력 기업 관계가 일방적인 톱다운이 아닌 순환적 자극 관계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협력 기업이 혁신을 주도해 대기업의 발전을 돕는 순환 공정에 주목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생태계를 도약시키는 데 초점을 이동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혁신의 요람이라고 하지만 칸막이 보호로는 모두 질식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자극도 필요하다. 스핀업을 활성화하거나 벤처 투자에 작심하고 나선다면 얼마나 진한 자극이 될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대기업이나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기술 엑스포도 동종 산업의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을 하는 데 적지 않은 자극을 준다. 기술 엑스포에 나온 신참 개발자들의 열의를 보면 약간의 지원만 추가되면 분명히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대기업·중견기업·공공기관과 동반성장위원회가 맺은 상생 지원 협약을 통해 110개 주도 기업이 금액으로 환산하면 총 38조 원에 육박하는 지원을 확정 추진 중이다. 기업 생태계에 자극을 주려는 것이다.
생태계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는 산업계가 물론 앞장서야 하지만 정부의 현명한 비전 설정과 유효한 정책 지원책도 중요하다. 깊숙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술 혁명은 산업계와 정부 그리고 중간에서 작용하는 수많은 조합, 협회, 관련 기관의 동태적 관계 설정을 요청한다. 어느 기관도 전체를 조감할 능력을 갖출 수 없다. 또 생태계는 몇몇 손으로는 천이(遷移)하지 않고, 산업 생태계는 최종 일반 균형인 극상(極上)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수의 주체가 항상 작동하는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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