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28·하나금융그룹)의 ‘은퇴 롤모델’은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다. 오초아는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하던 2010년에 “가정생활에 충실하려고 한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리디아 고도 “저도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게 잘 칠 때 은퇴하는 것이었다”고 말해왔다. 오초아에 대해서는 “전성기 때여서 계속 성적을 내고 싶고, 계속 하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런 면에서 존경받을 만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오초아가 은퇴할 때 나이와 비슷한 나이가 된 리디아 고는 슬슬 내려갈 준비를 하는 중인데 그의 골프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리디아 고는 2일 싱가포르 센토사GC 탄종코스(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나흘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우승했다. 2위 그룹의 후루에 아야카(일본)와 지노 티띠꾼(태국)을 4타 차로 여유롭게 따돌렸다.
우승 상금은 36만 달러(약 5억 2000만 원). LPGA 투어 통산 상금을 2059만 달러로 늘린 리디아 고는 통산 상금 역대 2위로 올라섰다. 1위인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2258만 달러·스웨덴)과의 차이도 200만 달러가 채 나지 않는다.
리디아 고가 지난 시즌 번 상금이 320만 달러였으니 은퇴한 소렌스탐을 넘어서 올 시즌 안에 역대 1위로 올라설지도 모른다. 경기 후 만난 리디아 고는 “2위로 올라섰다는 사실도 지금 들어서 알았다”며 “최근 투어의 상금이 (전체적으로) 올라서 그런 것일 뿐 소렌스탐 프로님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분”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리디아 고는 내년부터는 대회 출전 수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은퇴라는 단어에 조금씩 다가갈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 우승은 더 특별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한 길만 걸어왔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우승의 순간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오랜만에 대회장에 오셨는데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더 뜻깊다”는 리디아 고는 “오늘 함께하지 못한 남편(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아들 정준 씨)을 포함해 가족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 리디아 고는 아버지 고길홍(64) 씨와 언니 고슬아(36) 씨의 든든한 응원 속에 경기했다. 아버지와 언니는 모든 라운드를 따라다니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이 돼줬다.
리디아 고는 “아버지는 한국에 계시고 저는 해외에 있으니 사실 아버지에게 제 경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잘 없다”면서 “올해는 최대한 자주 아버지를 초청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메이저 대회는 꼭 와보시고 싶다고 해서 KPMG 여자 PGA 챔피언십(6월)에는 모시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리디아 고는 지난 시즌 ‘골프 성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는 등 3승을 올렸고 파리 올림픽 금메달로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최연소(27세 4개월) 가입 기록을 쓰는 등 스스로의 표현대로 ‘동화’를 썼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지난해 동화 같은 시즌을 보냈으니 올해도 좋은 한 해를 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고삐를 늦출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2014년 데뷔 후 23승을 올려 박세리의 25승과 오초아의 27승 기록을 바라보는 리디아 고는 올해 세 번째 출전 대회에서 시즌 첫 승을 올리면서 기대감을 부풀렸다.
US 여자오픈(5월)과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중 하나만 우승하면 4개 메이저를 제패하는 대망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리디아 고는 “두 대회가 올해 제 일정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걸고 나설 대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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