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여야 잠룡들이 줄줄이 임기 단축 개헌론을 내놓고 있다. 특히 탄핵 정국 속에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은 야당에서도 대통령 3년 임기 개헌에 가세하고 나서면서 여야 대선주자들이 개헌을 고리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포위하는 양상이다. 지지율 1위인 이 대표는 현재까지 개헌에 말을 아끼고 있지만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커 개헌이 대선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만에 하나 올해 대선이 열리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개헌을 이끌고 3년 뒤인 2028년 물러나겠다”며 개헌을 꺼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당선자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주도해 2028년에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러야 한다는 게 한 전 대표 구상이다.
앞서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자는 주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처음 꺼냈다. 4년 중임제나 결선투표 등은 정치권에서 그동안 수없이 나왔지만 3년 임기 단축은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뒤를 이어 유승민 전 의원도 3년 임기 단축에 손을 들었다. 이처럼 여권에서 대통령 임기 3년을 주장하는 속내는 탄핵을 초래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고육지책 성격이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려면 87년 체제를 종식시킨 뒤 깔끔하게 물러나겠다는 정도로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했다.
야권에서도 3년 임기 대통령제에 김동연 경기지사가 맞장구를 쳤다. 김 지사는 앞서 이 대표를 향한 개헌 압박 메시지를 냈고 이날 회동에서도 개헌 동참을 요구했다. 김 지사는 “제7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개헌이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압박은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김동연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던 정치 개혁 그림을 다시 연출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다만 현행 헌법을 고치려면 국회에서 재적 의원의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개헌 논의가 진전되려면 결국 과반 의석의 민주당을 이끄는 이 대표 의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앞서 이 대표는 한 TV 토론에 출연해 “지금 개헌을 말하면 탄핵 문제와 헌정 질서 회복 등이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며 “이재명이 (개헌론에) 어떤 입장인지는 이미 다 정리돼 발표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당시 발표한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감사원 국회 이관 △국회 총리추천제를 두고 발언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공약을 이번에도 다시 공언할지는 미지수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과 교수는 “늘 수세에 몰린 측이 개헌을 주장하고, 선거에서 유리한 측은 부정적이었다”며 “정당과 정치권이 진정성 있게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려야 하지만 정쟁에 갇힌 현 정국에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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